[종이책] 정상은 없다 - 문화는 어떻게 비정상의 낙인을 만들어내는가
정상은 없다
  • ISBN
    979-11-92099-06-4 (03380)
  • 저자
    지은이: 로이 리처드 그린커 옮긴이: 정해영
  • 제본형식
    종이책 - 무선제본
  • 형태 및 본문언어
    599 p. / 145*215 / 한국어
  • 가격정보
    33,000원
  • 발행(예정)일
    2022.07.18
  • 납본여부
    납본완료
  • 발행처
  • 키워드
    정신질환;낙인;장애;의료인류학;문화인류학;정신의학사;자폐증;군진정신의학
판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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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은 없다
문화는 어떻게 비정상의 낙인을 만들어내는가

초판 1쇄 발행 2022년 7월 18일

지은이 | 로이 리처드 그린커
옮긴이 | 정해영
교정 | 김정민
디자인 | 위드텍스트 이지선

펴낸이 | 박숙희
펴낸곳 | 메멘토
신고 | 2012년 2월 8일 제25100-2012-32호
주소 | 서울시 은평구 연서로26길 9-3(대조동) 301호
전화 | 070-8256-1543 팩스 | 0505-330-1543
이메일 | mementopub@gmail.com

ISBN 979-11-92099-06-4 (03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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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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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만에 나온, 낙인에 관한 가장 중요한 작업

자본주의, 전쟁, 의료화가 정상성 이데올로기와 정신 질환의 낙인에 미친 영향부터 자폐인을 고용하는 기업의 최신 트렌드까지, 낙인을 만들고 지탱하고 변화시키는 역사적, 문화적 힘에 대한 깊이 있고 매혹적인 탐구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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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서문 베들럼에서 나오는 길

1부 자본주의
1. 자립적 인간형의 탄생
2. 정신 질환의 발명
3. 분열된 몸
4. 분열된 정신

2부 전쟁
5. 전쟁의 운명
6. 프로이트를 찾아서
7. 전쟁은 친절하다
8. 노머와 노먼
9. 한국전쟁에서 베트남전쟁까지
10.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11. 병에 대한 기대

3부 육체와 정신
12. 비밀 말하기
13. 여느 질환과 마찬가지라고?
14. 마법의 지팡이처럼
15. 몸이 말할 때
16. 네팔에서 몸과 정신의 연결
17. 위험의 존엄성

결론 스펙트럼에서

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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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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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처드 그린커(Roy Richard Grinker)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고 하버드대학에서 사회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인류학, 국제문제, 인문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자폐증, 남한의 탈북민 및 중앙아프리카를 연구해 온 문화인류학자다. 조지워싱턴대학 민족지학연구소 소장이자 『계간 인류학Anthropological Quarterly』 편집장. 한국에서 최초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대규모 역학 연구(2006~2011)를 진행하기도 했다.
자폐증이 있는 딸을 키운 경험을 인류학자의 관점으로 풀어낸 『이상하지 않은 정신Unstrange Minds』(한국어판 제목은 ‘낯설지 않은 아이들’)을 썼다. 그 밖의 저서로 『아프리카의 품에서: 콜린 M. 턴불의 생애』, 『한국과 그 미래: 통일과 끝나지 않은 전쟁』 등이 있다.
요약.본문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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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베들럼에서 나오는 길


정상인이라는 개념은 사실 좋은 사람이라는 개념의 변형이다.
즉, 그것은 사회가 좋다고 보는 개념이다.
—루스 베네딕트, 1934

내가 여섯 살 때 할아버지가 최신 출판물 한 부를 주셨다. 경계성 인격장애를 진단하는 법에 관한 책이었다. 할아버지는 책에 이렇게 쓰셨다. “계속 이어 갈 내 손자에게.” 내가 문장을 온전히 읽을 줄 몰랐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그 뜻을 말해 주셨다. 나도 할아버지처럼 정신과 의사가 될 거라는, 그린커 집안에서 4대째 대를 잇는 정신과 의사가 될 거라는 뜻이었다.
나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다.
우리 가족은 물론 깊이 실망했지만, 나는 정신과 의사와 결혼하고 정신보건을 연구하는 인류학자가 되어 그 실망을 어느 정도 만회했다. 그리고 이 책이 정신의학과 우리 집안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나는 우리 집안의 유산을 ‘계속 이어 가는’ 셈이다. 이 책에는 19세기 후반에 신경학자이자 정신과 의사로 활동했고 정신병이 있는 사람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고 믿은 증조할아버지 줄리어스부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동아시아의 자폐증에 관한 연구를 통해 그 고루한 관점을 거부한 나 자신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우리 가족의 일과 삶이 곳곳에 스며 있다.
이 책은 전 세계의 많은 사회가 몇 세기 동안 정신 질환에 그늘을 드리웠던 낙인에 도전하고 있는 오늘날로 우리를 데려온 많은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연대순으로 기록한다. 비록 말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심지어 적절한 의료 체계를 갖추지 못한 저소득 국가에서도 뭔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낀다. 미국에서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60퍼센트가 여전히 정신건강 관리를 받지 않고 있지만,1 정신 질환은 우리 삶에서 예전보다 인정받으며 가시적인 부분이 되었다. 우리는 정신 질환이 생각보다 흔한 상태라는 것 그리고 정신 질환이 개인적으로든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 때문이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사실 정신 질환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하는 건 불가능하다. 21세기에는 레이디 가가와 수영 선수 마이클 펠프스처럼 우리가 찬양하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정신적 몸부림에 대해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새천년 세대는 부모 세대에 비해 정신과 진단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고 치료받으려는 의지가 있다. 내 딸 이저벨처럼 자폐증이 있는 많은 사람이 몇십 년 전만 해도 수치의 징표로 여기던 다양한 차이를 찬미하기까지 한다.
마치 서로의 다름과 차이가 대수냐는 듯한 이런 전개는 우리가 낙인에 굴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낙인은 우리의 생물학이 아니라 문화 속에 있다. 그것은 사회에서 학습되는 과정이고, 우리는 우리가 가르치는 내용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우선 낙인의 역사를 알아야 애초에 그것을 만들어 낸 사회적 힘을 겨냥하고 낙인을 줄이는 사회적 힘을 강화할 수 있으며, 치료를 가로막는 많은 장벽을 향해 “이제 그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로이 그린커라는 이름이 나와 같은 우리 할아버지는 다행히 증조할아버지의 불쾌한 관점을 나눠 갖지 않았고,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상당한 시간 동안 낙인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운 좋게도 할아버지 댁 건넛집에서 자란 나는, 빈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환자로 보낸 시간을 가끔 회상한 할아버지가 얼마나 자주 프로이트의 소망에 대해 말했는지를 기억한다. 그중 하나는 의사가 사람들을 비참에서 구해, 완벽한 삶은 아니라도 평범한 불행으로 이끌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정신적 고통이 보편적인 상태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프로이트는, 우리 모두가 신경증 환자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치료받는 것을 수치스럽게 느끼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리라. 심지어 어떤 정신적 문제는 흔한 감기처럼 누구나 때때로 걸리는 병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럼 더 많은 학생이 정신과를 전공과목으로 선택하고 싶어 할 것이다.
나는 모두에게 정신 질환이 조금은 있고 정신적 고통은 정상적 삶의 일부이며 모든 질병의 위계 안에 정신 질환이 존재한다고 믿는 집안에서 자랐다. 예를 들어, 불안증이 감기보다는 더 심각하고 암보다는 덜 심각해도 여전히 평범한 사람들이 평생 직면하는 질병의 범위에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고 내가 정신 질환의 낙인에 대해 무지하지는 않았다. 우리 집 밖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 질환에 대해 수군대고 숨죽여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암이나 치매, 성병에 대해서도 수군대고 숨죽여 말했다. 정신 질환에 대한 낙인과 육체적 질환에 대한 낙인의 차이를 알아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 깨달음은 내가 열일곱 살 때 찾아왔다. 할아버지가 정신병원에서 청소와 서류 정리를 하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내게 마련해 주셨을 때다. 어느 날 수척한 모습의 같은 반 여학생과 우연히 마주쳤다. 그 애는 환자였고, 내가 그 애를 본 것만으로 소동이 벌어졌다. 교장선생님, 그 애의 부모님, 우리 부모님과 할아버지, 그 애의 담당 의사, 내 아르바이트 선임 등 많은 사람한테 그 애가 입원했다는 걸 비밀로 하라는 경고를 하도 들어서 마치 내가 범죄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 애가 자기 상태와 주변에서 일어난 소동을 동시에 상대하며 얼마나 불편했을지, 나로서는 그저 상상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나는 그때 우리 사회가 정신병을 얼마나 무섭고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는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첫째, 질병 자체와 둘째, 사회의 부정적 판단이 결합된 이중 질병이었다.

해마다 미국 성인 중 20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6000만 명 이상이 정신 질환의 기준에 부합한다.2 이들의 질환은 대부분 가볍고 단기적이며 제한적이다. 그러나 심각한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다. 가장 치명적일 수 있는 거식증의 사망률이 어떤 면에서는 10퍼센트 가까이 된다.3 정신 질환과 거의 항상 연관된 자살은 미국 10대의 세 번째 사망 원인이고, 사망자의 대부분은 정신건강 관리를 받아 보지 못했다. 2013년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전국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학생들 가운데 13퍼센트 이상이 자살을 계획한 적이 있으며 17퍼센트는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답했다.4 그러나 많은 학생이 가족에게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정신 질환은 해마다 전 세계의 질병 부담 가운데 적어도 12퍼센트를 차지하며 남수단, 소말리아, 우간다 같은 저소득 국가에서는 심각한 정신 질환과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마을에서 감금되거나 학대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5
왜 더 많은 사람이 치료받으려고 하지 않을까? 사실 치료에 대한 많은 장벽이 질환 자체에 내재한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 심각한 사람은 병원에 가려는 의지 자체가 없거나 자신은 우울한 게 당연하다고 믿을 수 있다. 또 거식증이 있는 사람은 극도의 체중 감소를 반길 수 있기 때문에 치료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사회적 낙인이 가장 큰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국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낙인은 여전히 ‘정신 질환 및 보건 분야의 진보에 가장 무서운 장벽’이다.6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의 소장을 맡은 바 있는 스티븐 하이먼은 낙인을 국제적인 ‘공중보건 위기’라고 불렀다.
그런데 ‘낙인’이 정확히 뭘까? 심지어 학술 문헌에서도 낙인은 각기 다른 두려움과 편견과 수치심을 종종 무정형의 한 단어로 응집하는 기본 개념이 되었다. 학자들은 에이즈와 알츠하이머병과 조현병(‘정신분열병’ 또는 ‘정신분열증’으로 불렸으나 ‘분열’이라는 비가역적인 단어에서 오는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없애고자 2011년 약사법 개정을 통해 조율되지 않은 현악기의 불협화음 같은 상태를 나타내는 ‘조현병’으로 바뀌었다.—옮긴이)만큼 다른 질병, 나미비아 시골과 시카고 도심만큼 다른 장소, 수렵채집인과 대학생만큼 다른 집단 들의 낙인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아주 일반적인 차원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사회의 규범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사람이 소외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과정을 말한다. ‘낙인’을 뜻하는 스티그마stigma라는 단어는 날카로운 도구로 몸에 낸 표시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왔으며, 그 복수형 스티그마타Stigmata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상처와 오랫동안 연관되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낙인은 뭔가 다른 의미를 품게 되었다. 정신 질환의 낙인은 당신의 정신적 상태가 당신의 정체성을 규정할 때, 사람들이 당신을 결함 있고 무능하다고 여길 때, 당신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또는 사람들이 당신의 고통을 보면서 그것이 당신 탓이라고 생각할 때 나타난다. 그것은 사회가 인간의 차이에 특정한 빛을 비출 때 생기는, 누군가의 원치 않는 그림자다.
1963년에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지배 질서에 따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삶의 어느 시점에 낙인의 고통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글을 쓰고 있던 비교적 너그럽지 못한 사회적 상황에서는 ‘젊고 결혼해서 자녀를 두고 도시에 살며 북부 출신으로 백인 이성애자 개신교도이며 대학 교육을 받고 정규직에 종사하고 (피부색, 키, 몸무게를 포함해) 신체 조건이 좋고 최근 운동을 한 이력이 있는 남성’을 제외하면 누구나 낙인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7 (여성을 포함해!) 다른 모든 이는 잠재적 차별과 편견에 취약하다. 물론 세상 어디에나 어떤 형태로든 낙인이 존재하지만, 낙인의 대상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다. 사실상 피부색, 종교, 빈곤, 성별, 질환, 정신장애, 기형, 강간 피해, 혼외 출산, 심지어 이혼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불명예스러운 정체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분명 예나 지금이나 정신 질환은 사람들이 수치스럽게 여기며 숨긴다. 정신 질환을 숨길 수 없을 때는 주위의 숙덕거림을 통해 낙인을 경험하거나 따돌림과 괴롭힘, 공격 그리고 일자리나 주거지를 비롯한 많은 기회의 박탈을 통해 낙인의 위력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가 정신적 고통을 악화시키는 수치심과 비밀주의를 줄이며 관리와 치료를 가로막는 장벽을 부수는 중이라는 증거가 있다. 예를 들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치료를 받으려는 것은 점점 더 약점이 아닌 강점과 탄력성의 증거로 여겨지고 있다.8 어린 시절에 시작되는 상태에 대한 인식의 증대가 조기 개입 프로그램과 학교의 지원으로 이어졌다. 미국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 미국 공립학교에 다니는 전체 어린이 가운데 13퍼센트가 일종의 특수교육을 받고 있다. 그리고 정신적·육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18세나 21세부터는 성인이며 독립적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기대와 같은 기존 규범과 발전 단계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동성애나 트랜스젠더 또는 젠더플루이드(남성이나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젠더를 유동적으로 넘나드는 성 정체성.—옮긴이)가 병의 징후가 아니라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정체성이 되고 있다. 내 딸 이저벨이 ‘자폐증’이라는 단어를 자기 재능, 예컨대 복잡한 그림 퍼즐을 위아래를 뒤집은 채 맞추는 신묘한 능력을 묘사하는 데 쓸 때 나는 가끔 증조할아버지가 이저벨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해진다.
오늘날 유명인들은 자신의 정신 질환을 인정한다. 운동선수들은 이제 큰 경기에서 우승한 뒤 심리치료사에게 감사를 보낸다. 2017년 코미디언 데이비드 레터맨이 케네디센터에서 주는 마크 트웨인 유머상을 받았을 때, 그의 정신과 의사가 무대에 함께 올랐다.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자신이 받은 우울증 치료에 대해 그리고 과거에 자기 아버지의 정신 질환이 제대로 논의되고 진단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하고 글도 쓴다.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때 아르헨티나에서 정신분석가에게 치료받은 사실도 안다. 힙합, 특히 ‘이모 랩Emo Rap’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뮤지션들은 이제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침묵하던 정신 질환과 트라우마, 자살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9
요즘은 영화와 TV 프로그램도 정신 질환을 조명한다. 예를 들어, 그 의미가 계속 변하고 있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를 생각해 보자. 자폐증은 이제 수치심의 원천이 아니고, 경우에 따라 다소 좋은 의미까지 갖게 되었다. 자폐증 캐릭터가 아동물뿐 아니라 성인물에도 흔히 등장한다. 〈세서미 스트리트〉와 〈파워 레인저〉의 자폐증 캐릭터가 있고, 〈빅뱅 이론〉·〈실리콘밸리〉·〈커뮤니티〉·〈굿 닥터〉 같은 TV 프로그램에 자폐 성향이 분명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여러 상을 받은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의 주인공도 자폐증이 있다.
우리가 새천년 세대에게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지금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내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 중 한 명은 고등학생 때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를 받으려고 애쓴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학생의 아버지가 ‘너는 ADHD가 아니고, 좋은 성적을 낼 만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병원에 가 보겠다고 애원했지만, 결국 대학생이 된 뒤 자신이 직접 나설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녀가 수업 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ADHD로 진단받은 날이 신입생 시절 중 최고의 날이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내가 멍청하거나 게으르지 않고, 더 나은 성과를 위해 치료가 필요할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10 또 다른 학생은 “나는 정상인normal people이 싫어요.”라고 찍힌 티셔츠를 입었다. 신경다양성 운동을 지지한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특히 자폐증을 규정하는 신경학적, 인지적 차이와 ‘결핍’이 인간의 다양성상 보편적 측면이라고 주장하는 운동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사람들의 다름이 질병이나 장애가 되는 경우는 대개 사회가 그렇게 만들 때뿐이다. 계단을 대신하는 경사로나 승강기가 없을 때만 휠체어 사용자가 ‘장애인’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경다양성 운동에서 나온, 정상을 가리키는 단어 ‘신경전형인’이 말 그대로 ‘정상’을 뜻하지는 않는다. 비판적인 의미에서 이것은 정상에 대한 사회의 정의에 부합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최근에 내가 학생들에게 이런 유병률 추정치를 들려주었다. 미국 어린이 중 8~9퍼센트 정도는 ADHD 증상이 있다. 몇몇 주에서는 자폐증 유병률이 2퍼센트다. 8~10퍼센트는 불안장애가 있다. 성인 가운데 1퍼센트 정도는 조현병을 앓고 있다. 2.5퍼센트가 넘는 성인에게 조울증이 있다. 18~25세 성인의 우울증 유병률이 약 11퍼센트다. 한 학생이 농담으로 물었다. “그럼 이제 아무도 정상이 아닌가요?”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애초에 누구도 정상이 아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사회에 누구를 받아들이고 누구를 거부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정상’이라는 개념을 썼으며, 이제 정상이라는 것이 유해한 허구임을 깨달을 때다. 학생들은 낙인이 줄어든 것이 우리가 이제 신경다양성을 포함한 다양성을 동일성보다 중시하기 때문이고, ‘자기 삶에 전보다 개방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왜 더 개방적인지를 물으면, ‘낙인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런 순환적 사고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변화를 여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사실 오랜 시간에 걸쳐 낙인을 형성하는 역사적, 문화적 힘들을 근본부터 깊이 탐구한 학자들이 많지 않다.11 낙인이 이미 항상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연민을 품고 낙인 연구에 매진한 많은 연구자가 과거보다는 현재에 집중했다. 꼬리표와 고정관념이 어떻게 사람을 소외하는지,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위상을 잃고 차별당하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비밀로 하거나 사회적 교류를 피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가급적 동화되고 낙인이 따라붙는 속성을 은폐하는 식으로 자신의 차이를 관리하는 방식에 연구의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특정한 낙인이 왜 발생했으며 어떤 힘이 그것을 지탱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한다.12 예컨대 어째서 한 사회는 동성애를 정신이상의 한 형태로 보는 반면, 다른 사회는 그것을 범죄로 보고, 또 다른 사회는 그것을 인간 발달의 정상적인 부분으로 보는가? 어째서 한 전쟁에서는 트라우마가 군인들의 나약함과 여성성을 의미하는 반면, 다른 전쟁에서는 애국심을 의미하는가? 유럽과 북미의 산업화된 현대사회는 정신 질환과 관련된 낙인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이런 지식을 어떻게 이용하면 낙인이 따라붙는 질환이 있는 사람들의 치료와 관리를 개선할 수 있는가?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역사적 배경이 다른 사회의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기초과학에서 찾기 어렵다. 우리는 정신 질환을 현미경으로 보거나 실험실에서 시험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유전자, 아동기, 재산, 가난, 교우관계, 교육 등 우리 상상보다 많은 원인에 따라 만들어지는 경험이다. 그러나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전 소장을 비롯한 정신보건 전문가들은 우리가 정신 질환의 정확한 생물학적 원인을 발견하고 더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해 낙인을 줄일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본다. 미국 국립보건원 프랜시스 콜린스 원장은 자신이 국립인간유전체연구소 소장으로 있던 때를 떠올리며 ‘상세한 분자 특성 정의를 토대로 인간의 모든 질환을 이해하고 가능하면 재분류하기 위해 노력을 집중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13 이런 관점에서 정신 질환은 유전적 돌연변이와 신경계 질병의 산물, 다시 말해 자아 또는 사회의 병이 아닌, 뇌의 병일 것이다.
우리는 마침내 특정 정신 질환의 원인을 발견하고, 그에 따라 낙인을 줄일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HIV/에이즈와 그것의 전파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치명적 질환을 만성질환으로 바꿀 만큼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하면서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은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종양학에서 화학요법과 면역요법의 성공을 고려하면, 많은 암도 마찬가지다. 20여 년 전까지도 암이 비밀스러운 질환이었고 사망 기사에 단순히 ‘장기적인 질환 후 사망’이라고 적혔지만, 요즘은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뇌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정신의학은 아직 그 정도의 언저리에도 미치지 못했다. 몇 십 년 동안 진정 새롭다고 할 만한 정신의학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으며, 의사들이 기존 의약품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개선은 기껏해야 점진적인 수준에 그친다.
대부분의 정신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해 과학자들이 아는 것이 극히 적은 데다 정신 질환은 알려진 원인이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정신 질환은 한 사람의 삶 속 고통이나 장애와 관련된 행동양식이다. 1980년부터 여러 차례 출판된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이 다루는 수백 가지 정신 질환 중 원인을 언급하는 것은 (트라우마에 따른 외상 후 장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 겪는 사별 장애 또는 아동기의 비정상적 보살핌에 따른 반응성 애착장애 등) 몇 가지에 그친다. 그리고 (MECP2라는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일으키는 레트 장애처럼) 구체적인 원인이 식별되면, 해당 장애는 DSM에서 빠지고 유전학과 신경학 영역에 배치된다. 미국정신의학협회APA는 실제로 의사들에게 어떤 증상이 ‘비정신적인 질병’이나 ‘어떤 물질의 직접적인 생리 작용’에 따라 생길 가능성을 배제한 뒤에야 정신 질환 진단을 내리라고 말한다.
여기서 나는 암이나 에이즈와 달리 신경학적 또는 정신적 장애에 대한 낙인은 생물학적 설명으로 줄어든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발작 증상이 있는 뇌전증만 해도 그 생물학적 기반과 생리학, 유용한 치료법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져 있지만 아시아와 중앙아메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같은 지역에서 여전히 아주 큰 낙인이 따라붙는 상태 중 하나다.14 질환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는 것이, 특히 정신 질환의 경우, 반드시 낙인을 없애 준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가 나중에 보겠지만, 전기경련요법처럼 효과적이고 안전한 뇌 관련 치료법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적대감까지는 아니라도 여전히 두려워하거나 쉬쉬하는 반응을 보인다. 사실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생물학적 모델이 간혹 이로움보다 해로움을 가져오기도 한다.
내 전공인 문화인류학은 인류를 생물학 용어로 정의하려는 유럽의 초기 진화론적 시도에 대한 반발로 탄생했다. 19세기 사상가들이 과학이라는 무기를 이용해 처음에는 자연법칙이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을 지배한다고 주장하더니 나중에는 비서양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다시 말해 선천적으로 유럽인들과 다르며 따라서 선천적으로 열등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같은 근거로, 가난하거나 정신 질환이 있거나 발달장애가 있는 유럽인들도 선천적으로 열등하다고 믿었다. 인류학은 세계에 존재하는 놀랄 만큼 다양한 믿음과 관습을 조명함으로써 의사와 과학자, 정책 입안자 들이 한때 생물학적 주장으로 정당화한 (인종과 계급, 성별, ‘정신이상’의 제도화 같은) 배제의 메커니즘에 도전한다.15 문화는 그 자체가 많은 차별의 근거가 되는 선천적 차이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냈다. 진정 인간의 ‘본성’으로 여겨지는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문화를 통해 자연적 본성을 초월하는 고유한 능력일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진보의 역사에 관한 책이지만, 과학 지식 진보의 역사에 관한 책은 아니다. 지난 수 세기에 걸쳐 의학적 진보도 과학적 진보도 정신 질환의 낙인을 줄이지 못했다. 낙인은 문화사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이 만든 배척의 형식을 띤 사회적 과정이다. 정신 질환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 이상적인 사람에 대한 정의에서 나온다. 낙인은 특히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개인의 책임에 대한 이데올로기 그리고 전쟁과 인종주의, 식민주의의 복잡한 유산처럼 뿌리 깊은 구조적 조건의 결과로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정신 질환에 대한 우리의 역동적인 개념은 더 폭넓은 문화적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며, 과학이나 의학이 정신 질환의 수치심을 줄여 주는 듯 보일 때도 사실은 문화의 종으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모든 역사와 마찬가지로, 정신 질환과 관련된 낙인의 역사는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우여곡절과 의도하지 않은 결과, 위대한 진보와 충격적인 퇴보가 있다. 미국에서 많은 소수자 공동체들이 정신보건 관리를 덜 받는데, 서비스에 대한 접근 기회의 부족뿐 아니라 정신장애를 가족의 비밀로 하는 문화적 경향과 의료기관에 대해 학습된 불신도 그 이유다. 회원들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고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을 돕기 위한 알코올중독자들의 모임인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AA’은 여전히 익명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정신보건’이라는 단어 자체가 질병의 함의를 피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미국의 국립 연구소들이 (국립암연구소,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처럼) 해당 질환에서 온 이름이 붙은 반면, 정신 질환을 연구하는 주요 연방 기관에는 정신질환연구소 대신 국립정신건강연구소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중매체에서 군인들이 PTSD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정신 질환이 나약함의 징표라는 지속적 믿음은 많은 현역 군인들이 도움을 구하기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다.16 사이언톨로지 교회는 로스앤젤레스 선셋 대로에 ‘정신의학: 죽음의 산업’이라는 이름의 무료 박물관을 운영함으로써 홀로코스트부터 9·11테러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정신의학에 묻고 있다.
지속적인 낙인은 사람들이 도움을 구하지 못하게 한다. 미국에서 정신병의 발병부터 첫 치료까지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이 74주나 된다.17 최근 인간의 차이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지만, 조현병과 약물 남용을 비롯한 많은 상태가 자기통제와 자율성이라는 근대적 이상을 위협하기 때문에 여전히 낙인과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나는 상황이 얼마나 많이 개선되었는지를 보여 주고 싶다. 여러분을 1941년으로 데려갈 것이다. 당시 스물세 살이던 존 F. 케네디의 여동생 로즈메리가 보인 감정 기복과 반항적 기질을 치료하기 위해 그녀의 가족은 그녀에게 뇌엽 절제술을 받게 했는데, 이것이 심각하고 영구적인 뇌손상을 일으켰다. 여러분은 심리학의 역사에서 아주 유명한 에릭 에릭슨도 만날 것이다. 1944년에 그가 다운증후군을 안고 태어난 아들 닐을 보호시설에 보내고는 친구와 다른 자녀 들에게 아기가 사산되었다고 말했다. 다운증후군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자신의 명성에 해를 입힐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1949년에는 국방부 장관을 지낸 제임스 포레스털이 우울증 진단을 받는 수치심을 피하는 대가로 목숨을 잃었다. 즉각적이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자살하고 만 것이다. 1960년대에 의사들은 자폐증을 형편없는 양육 탓으로 돌렸고, 따듯하고 다정한 부모 세대를 냉담하고 가학적이라고 규정했으며 자폐아를 정신분석가 브루노 베텔하임이 ‘어머니의 검은 젖’이라고 표현한 것으로부터 분리하려고 보호시설에 보냈다.18 정신보건 관리의 든든한 옹호자인 배우 글렌 클로즈는 침묵이 자신의 여동생을 자살 직전까지 몰아갔다면서 ‘나는 정신 질환에 대한 어휘조차 없는 집안에서 자랐다’고 했다. 스티븐 힌쇼는 1960~1970년대에 아버지가 몇 달씩 집을 떠난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성인이 되어서야 아버지가 조울증 때문에 자주 입원한 사실을 알았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나는 그 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묻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고 그는 말했다.19
뒤에서 나는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비정상이라고 평가되고 소외당하며 차별당하고 실험 대상까지 되었는지, 그 역사를 추적할 것이다. 낙인과 질환은 물론 전혀 다른 개념이지만 유럽과 북미에서는 수백 년 동안 정신 질환이 낙인과 불가분적으로 엮여 왔고, 그래서 이 둘의 역사가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순응을 향한 행진이 처음 시작된 산업혁명기부터 많은 정신 질환과 다양한 존재 방식에 대한 낙인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줄어든 현재까지 차근차근 살펴볼 것이다. 정신 질환은 발명된 순간부터 낙인이 찍힌 근대적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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