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거주하는 장소
거주하는 장소
  • ISBN
    978-89-7059-940-3 (94540)
  • SET ISBN
    978-89-7059-937-3 (94540 ) 정보확인
  • 저자
    지은이: 김광현
  • 제본형식
    종이책 - 무선제본
  • 형태 및 본문언어
    190 p. / 135*210 / 한국어
  • 가격정보
    13,000원
  • 발행(예정)일
    2018.03.05
  • 납본여부
    납본완료
  • 발행처
    안그라픽스 - 홈페이지 바로가기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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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장소다. 장소가 없는데 사람이 그곳에서 살아갈 리가 없고 살아갈 사람이 없는데 집이 지어질 리가 없다. 장소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소는 이미 주어지는 곳이며, 무슨 조건이 무슨 소리를 내는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곳이다. 이런 장소를 건축가가 과연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옛 선조들은 마음이 드는 경치 좋은 장소에 정자를 세웠다. 이미 그곳에 있었던 장소의 힘이 정자와 함께한 것이다. 그러나 정자를 세운 이유는 아름다운 집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바라보며 지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정자를 그대로 들어내어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해보자. 그 정자는 본래의 자리에 있던 정자와 같은 것일까?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 장소와 무관하게 똑같은 집을 짓는 것은 똑같은 정자를 서로 다른 장소에 옮겨 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태도와 똑같다. 장소는 집이 지어지는 터이지 땅 위의 있는 어떤 위치가 아니다.

그런데도 건축가는 공간을 장소보다 더 높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건축가는 공간을 만든다고 할 수 있지만 장소를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장소는 공간보다 이해하기가 어렵다. 장소를 공간과 비슷하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장소와 공간은 다를 뿐 아니라 서로 반대다. 공간은 이곳에서 저쪽으로 확장하고 떠나는 것이라면, 장소는 저쪽에서 이쪽으로 돌아와 머무르는 곳이다.

장소는 어디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그리고 그곳에 머물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장소는 거주와 직접 관련된다. 거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생활 전체를 가리킬 정도로 의미가 아주 넓다. 사람은 어디에 가 있더라도 돌아와 머물고자 집을 짓지 떠나려고 집을 짓지 않는다. 집을 짓는 것이 거주하는 것이고 거주하기 위해서는 집을 지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건축은 공학적 산물이면서 늘 인간의 근본을 다룬다. 그러나 근대건축의 균질한 공간은 이러한 근본적인 거주의 장소를 대신해왔다.

이 책은 건축에서 장소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그리고 장소는 왜 쉽게 사라지는지 살펴본다. 주택, 주거, 거주의 의미와 함께 하이데거의 ‘거주하기’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오늘날 대도시에서 조금이라도 거주와 주거를 회복할 수 있는 방향도 다룬다.

거주하는 장소는 공동체와 깊은 관련이 있다. 공동체란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공동체는 살아가는 방식이며 공간을 이루는 방식이다. 따라서 공동체는 늘 의심해야 거주를 위한 새로운 장소가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지 발견하게 된다.

‘터’란 집을 지었거나 지을 자리이며 행위가 이루어지는 밑바탕이다. “터를 닦아야 집을 짓지.”라는 속담처럼 집을 지을 자리인 터가 행위의 바탕이 된다. 집을 짓지 않고 비어 있는 땅을 공터라고 한다. 터는 집을 짓든 밭으로 쓰든 비어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장소는 집을 지을 터이고 행위의 밑바탕이며 가능성의 저장고다.

건축설계가 무엇 하는 것인지 가장 간단하고 이상적으로 요약하자면, 그곳에만 있는 어떤 장소에서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생활이 가능하도록 물질로 구축하는 것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고유한 장소에서 우연히 일어날 행위를 담는 것이 건축설계다. 우리는 행위와 행위의 사이에 있는 우연을 포함하여 행위를 놀이나 사건으로 해석하고 공간으로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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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장 장소의 정체성

    제2장 건축과 거주

    제3장 공동체의 공간

    제4장 행위와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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