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후기그 날의 낭만과 감동을 함께 나누어요.

  • 남한산성 수원화성을 다녀와서

    남한산성 수원화성을 다녀와서

    남한산성 수원화성을 다녀와서 . 김 성 희(휴대폰 010 5388 1803) 온 산야가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시월의 멋진 날이다. 창공은 훤히 열려 구름 한 점 없다. 쨍그랑하고 투명한 소리를 내며 하늘이 깨어질 것 같다. 가벼운 행장을 꾸려 산행을 나섰다. 약속 장소엔 벌써 많은 분이 와 계셨다. 팔순이 넘은 학생부터 대전에서 엄마와 함께 왔다는 초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이번 답사에 참석했다. 나의 경우 맘만 먹으면 가벼운 차림으로 물 한 병 들고 수시로 나설 수 있는 곳이기에 조금은 의아했다. 강의를 듣기 전까지는 우리 집 앞산쯤으로 가볍게 여긴 곳이다. 설명을 듣고 책자를 보고 영상을 시청하면서 점점 귀를 바짝 세웠다. 닭백숙이나 먹고 차나 마시며 울창한 풍경을 즐기던 곳이 성지로 바꿨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배움을 받고 보니 유구한 역사를 품은 산성임을 새삼스레 깊이 알게 되었다. 남한산성은 통일신라때 축성된 주장성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치욕의 역사와 굴욕의 아픔을 돌멩이 하나까지 간직한 곳이다. 47일 동안 인조와 소헌세자가 능욕을 참으며 견딘 곳이고, 작은 의전에 모여 주화파 척화파가 피터지게 말싸움을 하던 곳, 마지막 닭 한 마리를 잡아먹고 서문을 나와 청 황제 홍타이한테 항복문서를 바친 곳이다. 영능을 다녀오면서 효종 영조 정조가 북벌을 다짐하며 들렸던 곳이다. 비록 적장을 맞아 싸우지는 못할망정 임금이 먼저 도망을 가 후세에 욕을 먹은 왕이지만 부성은 깊었는지 인질로 잡혀가는 왕세자일행을 더운 방에서 재워줄 것을 당부하고 한나절동안 망부석이 되어 일행이 멀어지는 길목을 지켰다고 한다. 힘없는 나라의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의 과거가 살아있는 화석으로 묻혀있는 남한산성이다. 수원화성에 왔다. 고장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여러 곳 답사를 다녔지만 갈비구이를 대접받기는 중앙박물관 답사가 처음이었다. 모두 흡족한 표정으로 교수님 뒤를 따랐다. 수원에서 나고 자라 수원화성 박사이신 이달호 교수님 열강을 듣고 구석구석 찾다보니 날이 저문 줄도 몰랐다. 정조대왕의 효심, 정약용을 선두로 실학파들의 견문록, 알뜰히 다듬어진 설계도, 임금을 주고 농한기 백성과 유류민 노동력을 이용한 설계된 신도시, 관과 민이 협심하여 신나게 축성된 화성은 어느 곳 빈틈이 없이 지어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1997년)된 성의 면모는 따져들수록 놀라웠다. 벽돌 한 장, 상차림, 의복, 숟가락 놓는 자리까지 그림으로 남겨놓은 화성성역의궤. 자연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높낮이에 맞춰 마땅한 건물을 신축한 점도 대단하다. 마침 한글날이라 나들이 나온 시민들 표정을 보니, 나는 새로운 세상에 시간여행을 온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발길 닿는 것만큼 아는 것만큼 더 깊고 재미있게 보인다는 말씀을 명심보감으로 새겼다.

    김신자 2019.10.16

  • 인문열차 백제문화역사기행 후기

    인문열차 백제문화역사기행 후기

    인문열차 백마강 역사기행 (2019.9,21-23) “잊혀 진 우리역사 백제이야기” 독후감 당첨으로 떠나게 된 인문열차 백마강 역사기행은 추석연후관계로 매월 둘째 주에 떠나던 것이 셋째 주인 9월 21일(토)로 한주 연기 떠났는데 올라오는 태풍 타파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정통으로 태풍의 비바람을 맞으며 추억에 남는 여행길이 되었다. 아침 일찍 용산역 여행자 부스에 7시 20분까지 집결하라는 문자 멧세지를 받고 아내와 함께 달려가니 아침식사를 못한 것을 예상 도시락을 준비해주어 맛있게 먹고 40분 출발 호남선 Ktx 18호차에 몸을 싫었다. 출발 후 광명역만 정차 두 번째 정차지 공주 역에 내리니 1,2호 두 대의 관광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정된 2호차에 올라 첫 번째 목적지 곰나루(고마나루)로 이동하였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강변 나루터로 가는 길에는 온통 곰들의 조형물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공주의 옛 이름 고마나루 전설은 연미산 암곰이 어부를 납치 부부의 정을 맺고 자식까지 두었으나 어부가 탈출하자 슬픔을 못이긴 암곰이 자식과 함께 금강에 빠져 죽었다는 데서 유래 되었다는 설명을 들을 때 까지도 태풍영향의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 곰을 모신 웅진단과 백마강 곰나루를 둘러보고 송산리 고분 무령왕 능으로 이동하니 비가오기 시작했다. 옛 부터 송산소라 불리고 20여개 고분으로 추정된 돌방무덤 6호 고분까지 발굴되었다가 벽돌무덤 7호 고분 무령왕릉이 발굴됨으로 찬란했던 백제 문화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는 설명과 발굴된 유물들을 왕릉 모형 고분 속에서 둘러보아 비는 맞지 않았다. 왕릉을 나와 다음목적지 공산성으로 가는 도중에 빗발이 더욱 세지기 시작하였으나 인문열차 역사기행에 심취된 모든 분들은 불평 없이 우산을 받쳐 들고 열심히 걸어가는 대열이 장관 이었다. 공산성은 위례에서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개로왕이 죽자 그 아들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하며 웅진(공주)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둘레 2,200m 도성이란다. 비석들이 즐비한 남문(진남루)길을 올라 장대에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유유히 흐르는 금강을 바라보며 백제의 옛 모습을 그려보며 교수님의 백제문화 공주천도 공산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비는 억세게 오지만 반대편의 쌍수정과 백제연못이 있는 왕궁 터 까지 달려가 들러보고 산성을 내려와 금강변의 세이학 국밥집에서 공주국밥과 알밤 공주 막걸리를 겻들인 점심은 정말로 우중 일품이었다. 식사 후 다음 코스 원산 정으로 향하였다. 탄천면 유하리 원산마을에 조선중기 주부벼슬 박의림과 그의 아들들이 세웠던 정자를 1973년 후손들이 복원 정면3칸 후면2칸에 원산 정 현판과 추사 김정희 낙관이 있는 “空山無人 水流花開” 현판과 <원산 정중수기> <원산 정 낙성운>이 걸려있는 모습들을 보며 교수님의 설명을 들었다. 다음코스는 금강의 수리관리를 위해 건설한 백제보가 있는 왕진 나루로 향하였다. 금강문화관 주차장에서 하차 금강문화관 시설들을 들러보았다. 왕복 2Km 이상 백제보를 건너 옛 나루터 까지 빗길을 뚫고 다녀오는 용감한 참여자와 도보길 행군에 참여하지 못하는 노약자 분들은 3층 전망대에서 대기하며 금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태풍 타파의 영향으로 비가 세차게 오자 고란사 앞 백마강 북쪽 1,5km 호암 리 의 임금바위 신하바위가 있다는 천정대 코스는 생략하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일정에 없는 정림사지 박물관으로 향하였다. 박물관에 들러 비를 피하며 백제 사비 도읍 기에 건립된 정림사 사찰의 내력과 목조건축에서 석조건축으로 시작된 오층석탑의 기법설명과 발굴된 유물들을 둘러보며 잠시나마 비를 피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곰나루, 송산리 고분, 공산성, 원산 정, 백제 보 왕진나루 정림사지 및 박물관 일정의 빗속 강행군을 마치고 저녁이 되자 부여의 명물 사비향 연밥 집에서 맛있는 연밥 식사를 하니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가시는 것 같았다. 식사 후 주변에 있는 백제의 정원 궁남지 에 들러 꽃피고 시들어진 연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서동요를 생각해보았다. 이렇게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1박할 호텔로 향하였다. 부부동반 참여였으나 한방에 3인씩 배정 관계로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배정하기에 오늘만은 이별이란다. 함께 싸간 욕실 물품을 아내에게 돌려주고 내방으로 오면서 여행 와서 부부와 헤어져 자보는 멋진 여행도 있구나 하며 한바탕 웃었다. 침실은 넓고 쾌적했으나 모기들의 습격에 곤욕을 치렀지만 그런대로 한밤을 지내고 아침에 북어국 백반으로 식사를 하고 밖을 내다보니 비는 그치지 않고 바람까지 불며 더욱 세차게 쏟아졌다. 하지만 모진 비바람이 불어도 주어진 일정에 불평하는 사람 없이 모두들 잘 따라주었다. 둘째 날 첫 번방문지는 숙종 때 학자 김집과 이경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 위폐를 모셨고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던 부산 서원으로 향하였다. 꼬불꼬불 빗속 시골길을 지나 목 백일홍 배룡나무가 심어진 서원에 들렀으나 올라가는 난간이 부서져 들러보지는 못하고 아래거소 처마 밑에서 우산을 바쳐 들고 1980년 군수가 복원 3칸 사우 중앙신문 양쪽협문의 3문이 있으며 사우에는 김집과 이경여의 위폐가 봉안되어있고 매년 9월18일 향사를 지내고 있다는 교수님의 설명을 들었다. 다음 목적지는 백마강변에 광해군 때 김흥국이 세운 정자 수북정이었다. 옛날 곡물과 어패류의 집산지로 유명하였던 규암진은 백제대교 완공으로 그 기능을 잃었으나 수북정은 거기서 조망되는 백마강의 경관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단다. 수북정 관람을 마치고 자온대는 우천으로 가지 않고 설명으로 끝냈다. 다음은 백마강유람선을 타고 강 건너 고란사에 도착 낙화암을 질러 부소산성을 넘는 험난한 코스라 노약자는 버스로 이동 부소산성 정문에서 입장하란다. 일전에 같은 코스를 둘러본 나는 유람선을 타지 않고 버스로 이동하면서 유람선 승객중 이동하며 찍은 사진만 부탁하였다. 60여명 일행 중 8명만이 버스로 이동하고 나머지는 모두 빗속의 백마강 유람선관광을 하고 강을 건너 고란사에서 고란사풍경 고란사 약수 고란초를 관람하고 산을 올라 백화정 사자루 반월루 군창지 삼충사를 거쳐 내려오고 노약자 8명 일행은 삼충사 영일루 군창지부소산성만 둘러보고 산성관광을 마쳤다. 모진 비바람 태풍 비를 맞으며 달려온 오전 관람은 영원히 잊혀 지지 않는 모두의 추억이 될 것이다. 빗속에 우산을 들고 아름다운 소나무 숲과 백제의 향기가 어우러진 부소산성을 내려와 출출해진 배를 채우려는 점심은 구두레 돌 쌈밥이란다. 잘 가꾸어진 식당에 들어가니 고풍스러운 옛 우리생활에 쓰인 각종 물건들을 공간마다 전시되어 있고 널직한 홀에는 많은 손님들이 법석이고 있었다. 맛 갈 난 돼지고기 수육과 쌈이 겻 들여진 맛있는 점심을 먹고 마지막 방문지 미륵사지로 향하였다. 공주유적지를 거쳐 부여유적지를 들러보고 이제는 익산을 들러볼 차례다. 식당에서 버스로 약 30분 이상 달려 익산미륵사지에 와서 버스에서내리니 태풍 타파의 본격적인 영향으로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 우산을 펼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었다. 하지만 인문열차 대원들은 비바람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한국최대의 사찰 지 백제 무왕 때 창건 되었다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한 사찰이란 설명을 들으며 국보11호인 동양최대 석탑 미륵사지 석탑을 보기위해 태풍을 뚫고 질퍽이는 필드를 가로질러 석탑 앞에서 사진을 찍다 날아가는 우산을 잡는 진풍경도 볼 수 있었다. 비바람이 너무세 필드설명은 생략하고 사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한 왕궁리 유적전시관에 들러 설명을 듣기로 하고 전시관으로 이동하였다. 전시관에 들러 문화해설사로부터 서동요와 선화공주의 설화에 대한 설명과 동영상을 보고 백제무왕이 사비에서 이곳에 왕궁을 새로지은 역사적 이야기며 발굴된 유물들 왕궁 터의 유적 등 설명과 특히 왕궁에서 사찰로 변화하는 왕궁리 출토유물들을 둘러보며 특이한 것은 당시의 화장실문화 설명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태풍 속 비바람을 맞으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1박2일의 인문열차 백마강 역사기행을 하면서도 낙오자 없이 전원 건강하게 익산역으로 이동 용산 행 Ktx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에 오르자마자 저녁간식 떡을 배달해주고 여행의 설문과 삼행시 백일장 용지를 나누어주면서 주제는 “백마강”이란다 익산을 출발 논산 계룡대 서대전 오성을 거쳐 용산까지 오는 도중 나의 삼행시 “백제의 유구한 역사, 마르고 마른 물같이 흘러, 강 산 은 변하여도 흔적은 여전 하구나”가 7인에 포함 당첨되었다며 이종묵 교수님이 저술한 조선의 문화 공간 4책 한권을 받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내 나이 팔순에 희수의 아내와 함께 주책없이 참여한 도서관 인문열차기행은 태풍 타파의 빗속여행으로 영원히 기억 될 것이며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국립 중앙 도서관 담당자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폔 을 놓는다.

    박유서 2019.09.28

  • 다시보는 정유재란/울산

    다시보는 정유재란/울산

    https://www.youtube.com/watch?v=uvlzKf1FrLw&t=12s

    배철 201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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