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후기

마지막 탐방길에 비마져 내려…

등록일 : 2014-12-14

조회 : 5414

작성자 : 이광세

금년 마지막 탐방길에 비 소식이 있다니 걱정이다. 요즘 일기예보는 놀랍게 잘 맞춘다.
어쩌다 예보가 빗나가 일을 망칠땐 기상청에 대고 입총을 쏘아댔는데, 이럴때는 제발
빗나가 주길 바라는 간사한 心통이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어둠속 비를 맞으며 길을 나섰다.
비온다고 빠진사람없이 버스는 가득찼다. 을씨년스런 버스창문에 내려치는 빗방울이
부족한 잠으로 몰아간다. 홍인희 교수의 이번 탐방에 원주.횡성 지역의 역사 뒤안에
숨은 속살과 승자는 누구며 패자는 누군지 기대된다.
예부터 횡성은 「사람은 서울로 소는 횡성으로」라는 말이 전해 오고있다.
우리주변 마트나 정육점에 「횡성한우」로도 널리 알려져있다. 또한 횡성 사람들의 강인한
기질을 일컬어 「횡성 3횡(橫)」이란말이 회자되고 있으니
- 산새가 빗겨나 있어 ····……… 山橫 ,
- 산따라 냇물도 빗겨있어 ·····……· 川橫
- 사람들 품성 또한 호락호락치 않아 ···人橫 이라 한다.
< 어리숙하고 순진하다는 강원도민들에 대한 횡성 깍쟁이와는 대조되는 얘기다 >
책속에서 조선의 풍수지리 대가 격암 남사고는 부론을 가리켜 「왕기가 서린곳」이라 하였다. 한 고을에서 왕가의 왕비를 4명씩이나 배출하였으니 말이다.
- 선조의 인목대비(정비) 는 영창대군을 낳았고
- 〃 공빈김씨(후궁) 는 광해군
- 인조의 인열왕후(정비) 는 효종
- 고종의 엄귀비 (후궁) 는 마지막 영친왕을 낳았다.
<인목대비 향리>
조선선조의 장인이며 인목대비의 친정아버지 의민공 김제남의 고향 안창마을에 내렸다. 탐방여행의 콘텐츠는 걸으며 배우는 스토리 텔링인데 비를 맞고 움직이니 진행이 어렵다 종가에는 (14대 김길주) 벽안(미국인)의 며느리가 손을 맞이한다. 김제남은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한다는 무고를 받아(광해군5) 세 아들과 사약을 받았다. 이것도 모자라 광해군 8년에는 폐모론이 일어나면서 부관참시 까지 당했으니….
조선태조의 「왕자의난」못지않은 「왕가의난」인 것이다.
인목대비에게 영화는 한때였다. 폐모살제로 서궁(덕수궁)에 유폐되어 부귀빈천이 물레바퀴 돌듯 궁중비화를 겪으며 후회도 했으리라 생각된다. 왕가는 가욋길이었다고…
지옥같은 서궁에서의 원한과 복수의 심정을 한글일기체로 「계축일기」를 남겼다.
「인현왕후전」「한중록」과 함께 조선의 3대 궁중문학의 대표작이다. 역사소설과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은 이 소설을 읽지 않고는 작품을 쓸수 없었다고 한다.
<승자의 미소>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는 속담이 있다. 신라말기에 승려 도선은 왕건의 아버지 왕륭에게 송악산밑에 명당자리를 잡아주며 여기에 집을지으면 삼국을 통일할 아들을 낳는다고 하였다. 도선의 말을 따른 왕륭은 왕건을낳았고 고려를세운 태조왕건은 집터가 좋아서 새로운 왕조를 세울수있었다. 우리는 왕건에게 패한 견훤산성터를 찾았다. 길도없는
비탈 골자기에 성터에서 흘러내린 돌조각이 발밑에 널려있다. 푸른 이끼를 잔뜩품고 천년 세월을 흘러내린 기록이리라. 빈몸 오르기도 힘들어 숨돌리기 바쁜데 그 옛날 민초들은
등짐에 돌을지고 헐떡이며 소나기 땀에 오죽했으랴.
<흥원창>
흥원창은 섬강과 남한강을 잇는 드넒은 포구다. 갈대 날리는 강가모래톱, 깍아지른 벼랑이
창공을 향해 병풍처럼 솟아있고, 백로한쌍 산모롱이 날아 내리니 놀란 물오리떼 물보라
날리며 날아오른다. 강가에 늘어선 평저선은 흔적없고 조창으로 이어진 들판엔 적막으로
깊이 잠들고 있다.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비는 고려시대 세워졌는데 현묘탑은 현재 경복궁 고궁박물관 옆에있다. 탑보다 탑비조각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비 양쪽에 새겨진 구름과 용의 조각은 극치의 예술품이다. 우람한 거북등옆 돌층에 않아 법천사 옛터 발굴현장을 보니 전성기 사역 (寺域)규모가 엄청 넓었음을 보여준다. 들머리 노거수 느티나무는 천년의 속병에 거죽만 앙상히 병풍상성(病風喪性)으로 버티고 있다.
< 불운의 천재시인 이 달(李達) >
이달의 시비가 있는 부론면 손곡리에 왔다. 서자였기에 벼슬도 못하고 홀로 떠들다 많은 시를 남기고 생을 마쳤다. 제자「허균」이 엮은 「손곡집」이 있다. 그중에 한수를 옮겨본다.
박 조 요 (撲 棗 謠) - 대추따는노래 -
※ 撲 : 두드릴 박 棗 : 대추 조
- 隣家小兒來撲棗 (이웃집 꼬마가 대추 서리를 하는데)
(인가소아래박조)
- 老翁出門驅小兒 (늙은이 문을 뛰어나와 꼬마를 내쫓는다)
(노옹출문구소아)
- 小兒還向老翁道 (꼬마가 도망치다가 홱 돌아서더니 욕을 해댄다)
(소아환향노옹도)
- 不及明年棗熟時 (영감탱이 내년 대추때까진 있지도 못할거면서)
(불급명년조숙시)
이웃집 대추를 욕심내 서리를 하러온 아이를 보고 작대기를 들고 나선 노인
˝ 네 이놈! 게 섰거라˝ 노인의 서슬에 감짝놀라 달아나던아이가 약이 올랐는지
홱 돌아서서 소리지른다 ˝ 영감탱이! 내년엔 뒈져라! ˝ 라고. 늙은이가 아무리 잰걸음으로 쫓아와도 꼬마는 얼마든지 달아날 자신이 있을테니까.
나의 초등학교 시절얘기다 4km 넘는 읍내 학교에서 돌아오다 배가고파 마을앞 뽕밭에 벌떼처럼 몰려가 오디를 따 먹었다. 노인네가 소리치며 달려온다. ˝ 네 이놈들! ˝ 우리는 노인이 가까이 올때까지 여유있게 따먹는다. 바로 눈앞에 다가왔을때 사방으로 흩어 도망친다. 힘없는 노인은 누굴 잡아야할지 막대기만 휘두르며 허둥거린다. ˝ 나 잡아봐라 ˝
하고 달아난 기억이 되살아난다.
<패자의 눈물>
이번 탐방의 마지막 코스로 손위실(遜位室) 마을앞에 모였다. 고려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쫓겨온 골짜기다. 실록에는 원주로만 기록되어있고 어느곳에서 얼마간 머문 기록은 없다. 마을 노년층에서 손곡리를 손위실이라고 부르고 마을뒷산을 망경산
(望京山) , 배앙산(拜仰山) 이라 불렀다. 망경산은 개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산이고
배앙산은 고려의 옛땅에 절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을 남기고 있다.
<맺 는 말>
패자의 눈물이 맺혀있는 손위실 마을앞에서 길위의 인문학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그동안 국립중앙도서관과 쏙쏙체험의 진행에 만족하였고 길에서 맺은 인연
더욱 잊을수 없다. 새해에는 새로운 행사로 만나길 바라며 모든분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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