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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신체로 생각한다고 하면 몸에 친숙한 스케일로 크기를 정하고 유기적인 재료로 집을 짓는 것을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올립니다. 물론 이것이 신체를 바탕으로 건축물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그러나 건축에서 신체는 그보다는 더 근본적입니다.
벽이 똑바로 서 있습니다. 이것은 똑바로 서 있는 자기 몸이 가장 아름답고 진실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굽어진 벽도 있습니다. 이것도 자연스러운 몸짓을 하는 자기 몸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모두 자기 몸을 두고 건축을 판단한 것입니다.
몸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건축은 옷을 닮았습니다. 옷이 몸을 감싸듯이 건축은 사람의 몸을 감쌉니다. 그러면 옷이 몸에 반응하듯이 건축도 사람의 몸에 가볍게 반응해야 하며, 의자가 몸에 더 가까우니 의자로 행위와 공간의 관계를 새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건축을 신체로 바라보는 이유입니다.
사람이 집을 지을 수 있기 전에 동굴에서 살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사람이 동굴에서 살았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큰 의미가 있다는 말일까요? 저 먼 옛날에 동굴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함은, 집이란 본래 사람의 몸과 직접적인 관계에서 비롯했다는 말입니다. 똑바로 선 벽이나 기둥은 언어로 해석된 것이지만, 굽어 있는 벽은 언어가 되기 이전의 상태이며, 동굴에 더 가깝고 신체에 더 가깝다는 뜻입니다. 건축에서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것, 언어 이전의 것을 찾겠다고 생각할 때 신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몸은 지각하며 움직입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따뜻한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견고한 물질은 눈으로 보는 크기와 몸에 닿는 촉각을 직접 느끼게 해 줍니다. 그 정도로 건축은 감각에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그래서 건축은 시각과 촉각, 치수와 크기, 스케일, 거리, 사물을 통해 현상과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물방울이 빛을 만나 노을이 생기듯이 사물은 지각되는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몸에 반응하는 아주 큰 사물인 건축은 지각과 분위기라는 문제에 직접 관여하게 되어 있습니다.
표면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낮추어 보는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건축에서도 표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표면으로 사물을 지각합니다. 표면은 표정을 주고 빛도 반사하기도 하며 물성을 나타내고 공간을 가장 직접적으로 형성합니다. 몸을 옷에 비유하듯이 표면을 피부에 비유하면, 건축도 표면을 통해 아주 적극적으로 환경에 반응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이끌어냅니다. 이런 이유에서 현대건축은 표면, 물성, 현상 등을 중요한 과제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지각하는 신체에는 무언가를 응시하는 시선이 함께 있습니다. 시선은 기회가 되면 넓게 보려고 하지만 불리하면 숨고 피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사람이 들어가 살고 있는 건축물의 창문이 시선과 직접 관련되어 있고, 영역이나 공간도 보고 보이는 사회적인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멈추고 움직이고 이동합니다. 그래서 건축은 어디를 향해 가는 것, 멈춤과 이동, 순회와 방사라는 개념과 함께 존재합니다. 멈춤과 이동은 건물 안과 밖을 지나며 공간을 연결하는 순환이나 흐름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또 이렇게 공간 안을 움직이면 마치 영화처럼 건축과 신체, 공간과 행위가 결합된 장면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시퀀스가 나타납니다. 사람의 몸이 공간에서 움직인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건축적 주제를 던져 줍니다.
이렇게 간단히 요약해 보아도 똑바로, 분절하여, 합리적으로 지어지는 건축에서 신체는 흥미롭기도 하지만 아리송한 개념을 계속 낳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언어 이전의 많은 것이 건축을 둘러싸고 있다는 뜻입니다. 건축은 언어와 신체 사이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