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공예를 생각한다: 한국 현대 공예의 성찰과 과제
공예를 생각한다: 한국 현대 공예의 성찰과 과제
  • ISBN
    978-89-7059-894-9 (93630)
  • 저자
    최범
  • 제본형식
  • 형태 및 본문언어
    약 288페이지 내외
  • 가격정보
    14,000원
  • 발행(예정)일
    2017.05.02
  • 납본여부
    납본완료
  • 발행처
    안그라픽스 - 홈페이지 바로가기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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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를 생각하는 뜻



첨단 기술과 고도 산업 시대에 공예를 생각하는 뜻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문화의 근본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공예는 문화의 근본이다. 하지만 한국 근대에서 이 근본은 크게 흔들렸다. 근대화로 인해 한국 사회는 새로운 문명 단계로 진입할 수 있었지만, 비주체적인 근대화는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원래 근대화는 공

예에 위협적이다. 전근대사회의 산물인 공예는 근대가 되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 공예의 운명이 근대에서 그리 단순했던 것만은 아니다. 공예는 근대화 과정에서 소극적으로는 적응하며 살아남거나, 적극적으로는 근대의 문화적 자원이 되고, 나아가서는 근대 이후로 이어지는 ‘오래된 미래’로서의 가치를 투

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한국 근대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한국의 전통 공예는 근대국가의 문화재 보호 제도에 포섭되는 등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살아남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근대 문명의 창조적 자원으로 사용된 적도 거의 없었으며, 공예의 미래적 가치에 대한 관심 역시 아직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한국 현대 공예는 전통적이지도 현대적이지도 미래적이지도 않다. 공예가 문화의 근본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근대는 바로 그러한 근본으로서의 문화가 철저히 짓밟히고 망각된 시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근대가 주체적이지 못했던 만큼 공예 가치의 훼손 또한 심대했던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는 식민지화와 병행되었기에 근본에 대한 상실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러한 모순이 식민지 이후에도, 우리 자신에 의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자괴감마저 들게 만든다. 새삼 무슨 복고주의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시대착오적인 기계 파괴주의나 중세의 낭만적인 공동체성을 강조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근대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가치를 되돌아보고 가능하면 그것을 회복하여 지금이라도 힘써 현재와 미래의 문화적 자원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솔직히 우리 전통문화 중에서 공예만한 것이 어디 있는가. 아름다운 전통 공예는 확실히 우리의 자랑거리이고 외국에 들고 나가면 어디를 가나 환영 받는다. 그래서 각종 외교나 문화 교류 행사에는 공예가 빠지지 않는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전시에서 외국인들의 갈채를 받고 잠시 우쭐대지만, 과연 우리의 공예의 현실이 그리 밝다고 할 수 있을까. 외화내빈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국가의 공예 전문 기관이 대통령의 개인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공예 쇼에 몰두하기도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진정한 공예 발전과 상관없는 일이다.



아무튼 나는 한국 근대의 모순이 가장 심하게 나타나는 분야의 하나가 공예라고 생각한다. 자랑스러운 공예 전통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기는커녕 왜곡하고 훼손해오지 않았던가.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대학에 똬리를 튼 채 식민지 문화제도를 존속시켜온 세력들과 민족문화라는 미명 아래 공예를 통치의 도구로 사용해온 권력의 책임이 크며, 아무런 생각 없이 거기에 부화뇌동해온 공예가의 무지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이처럼 한국 현대 공예를 보는 나의 관점은 매우 비판적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대략 2000년대 초부터 공예에 관한 글을 써왔다. 2006년에는 한국공예문화진흥원에서 『공예문화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그때까지 쓴 글을 묶어 펴낸 적이 있었지만 시중에 유통되지는 못했다. 기존에 펴낸 몇 권의 디자인 평론집에도 일부 원고가 실린 바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한국 공예에 대해 비판적 관점에서 써온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보고 싶은 욕심에서 다소 중복되는 내용도 모두 싣게 되었는데, 이 점은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그리고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공예+디자인》(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저널에서 가진 좌담 원고의 전재를 허락해주신 한서대학교 장경희 교수와 공예 평론가 김세린 님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핸드메이드와 제작 문화의 열기와 함께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런 시대에 새삼 공예를 강조하는 뜻은 앞서 밝힌 대로이다. 아무리 첨단 기술과 고도 산업 시대라 하더라도 공예의 자리는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내가 공예를 문화의 근본, 즉 자연과 전통, 솜씨와 아름다움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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