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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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호.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한글꼴연구회 선배들에게 몇 번이고 들었던 이름이었다. 대학교 4학년 때 디자이너들이 즐겨 쓰는 글꼴을 조사했는데, 그때 다수가 SM글꼴을 언급했다. 그리고 그 이유로 최정호의 원도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완성도가 높다고 입을 모았다. 글꼴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을 때도 명조체, 고딕체의 오묘한 선을 마주할 때마다 최정호 선생이 그린 원도에 대한

    궁금증이 깊어졌다. 하지만 그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었다.



    2010년 12월경 논문 학기를 코앞에 두고 있었을 때 지도 교수인 안상수 선생님께서 박사 논문의 주제를 최정호 선생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하지만 섣불리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 때 마침 애플(Apple)로부터 아이오에스(iOS)에 쓸 만한 한글 글꼴을 추천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관련 보고서를 안 선생님과 함께 작성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애플고딕, 애플명조를 누가 개발했는지 추척하다가 전 신명시스템즈 대표 김민수 사장에게 놀라운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김민수 사장이 애플의 첫 국내 유통을 맡았던 엘렉스컴퓨터를 위해 신명글꼴을 ‘애플고딕’ ‘애플명조’라 이름 붙여서 탑재해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SM글꼴인데 이는 최정호 선생의 원도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 했다. 결국 애플의 첫 한글꼴도 최정호 선생의 손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이렇듯 내가 무슨 일을 하건 그 끝에는 최정호라는 인물이 버티고 있었다. 이제는 피해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으로 그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도활자시대의 원도와 그 설계자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을뿐더러 자료에 따라 내용이 달라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백 년 된 자료는 귀하다고 여겨서 보관하고 정리한 것이 많은 반면 불과 십수 년 전의 자료는 쉽게 버려지고 잊힌 것이 많았다. 국내 자료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작은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최정호 선생의 원도를 찾았다. 다행히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도움을 주는 이들이 나타났고, 소문으로만 들었던 최정호 선생의 원도를 눈앞에서 보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이 책은 최정호 선생의 생전 인터뷰 및 기고문, 가족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그의 생애에 대해 글을 쓰고, 원도에 대한 분석을 덧붙였다. 그의 삶을 찬찬히 되짚는 과정을 통해 나는 내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시작으로 그가 남긴 유산을 정리하며 그가 미처 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더 찾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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