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문헌정보학도와 사서 가운데 ‘랑가나단(Shiyali Ramamrita Ranganathan)’①의 《도서관학 5법칙(The Five Laws of Library Science)》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의사가 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듯이, 사서가 될 때 지침으로 삼을 만한 것이 바로 ‘도서관학 5법칙’이다.

랑가나단은 도서관학을 학문으로 정립한 석학이자, 도서관운동의 거성이다. 그는 조국 인도에서 국가대표급 학자로 추앙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도서관학 이론과 사상으로 세계적으로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1892년 인도 마드라스 탄주르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중산층 지주로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②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즐겼다. 랑가나단은 세 살 때 아버지가 매일 야자나무 잎으로 만들어진 《라마야나》 필사본을 읽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외출할 때마다 그 필사본을 가져다 보곤 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일생 동안 매일 《라마야나》를 애독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③

《도서관학 5법칙》을 읽어 보면, 딱딱한 이론서라기보다는 장대한 서사시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책은 도서관학 개론서, 도서관경영 실무지침서, 도서관사상 논저이자, 도서관학의 원리를 규명한 이론서의 성격을 띠지만, 책을 자세히 읽어 보면 글쓰기 방식의 다양함에 놀라게 된다. 이 책은 일기, 회고록, 역사서, 사례보고서, 기행문, 희곡, 유머집, 시집, 수필, 잠언집, 연표, 정부통계서, 법률서, 규정집, 서지 등 실로 다양한 면모를 지닌 대서사시다. 이 책이 이렇게 서술된 계기는 아마도 랑가나단이 어릴 때부터 《라마야나》를 애독한 것에서 비롯되었으리라.

필자가 최근 《도서관계》에 소개한 세라(J. H. Shera)와 마찬가지로, 랑가나단도 처음부터 도서관학을 공부하거나 사서가 되고자 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대학 시절 명료한 과학적 사고를 중시하는 수학의 세계에 입문하였다. 그는 마드라스기독교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여 1913년에 학사학위, 1916년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교육계로 진출하기 위해 사이다페트 사범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1917년에 망갈로르 관립대학에서 강사 신분으로 수학과 물리학 강의를 시작하였다. 1921년에는 프레지던시대학의 교수가 되어 수학을 가르쳤다.

이처럼 그는 수학의 세계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사람이었다. 세라와 마찬가지로, 랑가나단에게도 인생의 등불을 밝혀주는 멘토(Mento)가 있었다. 첫 번째 멘토는 수학 석사과정의 지도교수인 에드워드 로스(Edward B. Ross)였다. 로스 교수는 랑가나단이 과학적 사고방식을 형성하고 수학자의 길로 들어서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랑가나단이 도서관학으로 선회한 이후에도 말벗이 되어주고 그가 창의적으로 착상하는 데 한몫을 하였다.

그런데 도서관과는 무관하게 살던 랑가나단이 어떻게 도서관학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일까. 바로 1924년에 마드라스대학의 초대 도서관장으로 임명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가도서관장이 된 것은 사실 보수 조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서관 운영에 대한 지식이 없는 그에게는 관장 생활이 고독한 감옥생활과 다를 바 없었다. 이처럼 사서직 진출을 두고 갈등하기는 하였으나, 랑가나단은 도서관에 채용되는 조건으로 영국에 가서 도서관 경영방법을 배워오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학길에 올랐다.

런던대학교 도서관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랑가나단은 도서관학과 사서직에 눈을 뜨게 된다. 이 학교에서 랑가나단은 또 한 명의 멘토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세이어스(W. C. Sayers)다. 세이어스는 분류이론가이자 영국 공공도서관 운동가다. 세이어스는 랑가나단에게 도서관학이 수학만큼이나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도서관학 중에서 수학적인 요소가 가장 강한 분류 분야를 연구하도록 권유하였다. 랑가나단은 또한 세이어스의 배려로 크로이던 공공도서관에서 실습을 하고 영국에 있는 100여 곳의 도서관을 연구 시찰할 수 있었다. 랑가나단은 관찰한 도서관들 대부분이 지역사회에서 독서센터 기능을 하고 있고, 어린이, 여성, 노동자 등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또한 그는 작은 마을의 주민들도 도서관 봉사를 받을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조직된 도서관망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④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랑가나단은 일생토록 헌신할 분야와 소명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조국에 영국과 같은 공공도서관과 도서관망을 만드는 것이며 또한 도서관학을 학문의 반열에 올려놓는 일이었다.

이후 그는 도서관장과 도서관학자로서 이론 개발과 도서관운동에 헌신하였다. 1925년에 마드라스대학 도서관장에 본격적으로 취임하여 1944년까지 일하였다. 1945년부터 1947년까지는 바라나스힌두대학교에서 도서관장 겸 도서관학 교수로 일하였고, 1947년부터 1954년 동안에는 델리대학교에서 강의와 연구 생활을 하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인도도서관협회(Indian Library Association)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하고 마드라스 공공도서관법 제정에 기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이후 1954년부터 1957년 동안 그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조용히 연구와 저술활동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조국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여러 저명한 과학자와 행정가들이 귀국을 요청하여 그는 1957년에 귀국하여 방갈로르로 갔다. 같은 해에 그는 도서관학 발전을 위해 마드라스대학교에 두 번째 부인의 이름을 따서 ‘사라다 랑가나단 도서관학 강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10만 루피를 기부하였다.

당시 그는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으며, 1962년에 그의 71회 생일을 기념하여 전 세계의 많은 도서관학자들이 참여하여 방대한 《랑가나단 기념논문집(Raganathan Festschrift)》을 발행하였다. 같은 해에 그는 방갈로르에 도서관학 연구소를 설립하여 직접 소장이 되어 평생 동안 연구소 활동을 이끌어갔다. 또한 그는 1965년에 인도 정부가 수여하는 도서관학 국가연구교수(National Research Professor)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았다. 그는 1970년에 미국도서관협회의 마거릿 맨 분류편목상(Margaret Mann Citation in Cataloging and Classification)을 받았고, 1972년에 향년 80세로 별세하였다. 그는 일생 동안 저서 60여 권, 논문 2천여 편을 남겼다.

끝으로 여기서 ‘도서관학 5법칙’을 음미하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도서관학 5법칙’은 다음과 같다.

제1법칙: 책은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Books are for use)
제2법칙: 모든 이용자에게 그의 책을(Every reader his book)
제3법칙: 모든 책은 그의 이용자에게(Every book its reader)
제4법칙: 이용자의 시간을 절약하라(Save the time of the reader)
제5법칙: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다(Library is a growing organism)

지면 관계상 여기서는 제1법칙과 제5법칙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도서관문화사를 통하여 볼 때, 제1법칙은 가히 혁명적 내용을 담고 있다. 수천 년의 인류 역사에서 책은 이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수 특권층을 위한 것이었으며 무엇보다도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1법칙에 따르면 사서는 독자의 이용에 주안점을 두고 일해야 한다. 한마디로 사서는 도서관을 이용하러 오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며, 현인이며, 안내자여야 한다. 시인 타고르(R. N. Tagore)가 말한 것처럼 “도서관에서 키워야 하는 것은 규모가 아니라 손님에 대한 환대”이며 친절한 개인적 봉사이다.⑤

5법칙은 도서관은 성장한다는 사실을 공표한다. 도서관이 자라난다는 사실은 도서관의 경영, 건축, 시설, 가구, 분류, 목록, 대출, 규칙, 직원, 업무조직 등 제반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제5법칙은 이러한 제반 영역에 대한 고려사항을 상술하였다. 일례로 랑가나단은 제5법칙을 고려하여 동일한 규격으로 만든 유니트식 서가, 호환·조절이 가능한 선반, 다양한 선반 안내표지, 그리고 연속간행물 테이블을 설계하기도 하였다.

21세기 지식기반시대의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도서관학 5법칙’을 재조명하고, 이를 사서직의 사명, 도서관경영의 지침, 문헌정보학의 사상적 기초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와 도서관의 현실과 발전단계에 맞는 ‘한국적 문헌정보학’을 정립하는 작업을 일구어온, 대표적인 문헌정보학자 김정근은 ‘사서정신’과 ‘도서관정신’을 강조한다. 그는 랑가나단을 읽은 맛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랑가나단의 언어는 간결, 담백, 그리고 시적이었다. 그것은 도서관에 대한 사랑의 노래였다. 애절하고 애틋한 여운이 남았다. 따뜻한 분위기가 가득하였다. 나에게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사랑의 시 맛이었고, 노자 도덕경의 맛이었고, 성서 잠언의 맛이었다.”⑥

우리의 사서정신과 문헌정보학의 사상을 찾고 다지는 작업에 랑가나단은 믿음직한 안내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를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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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Ranganathan을 우리말로 옮길 때 ‘랑가나탄’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 출판된 번역서, 《도서관학 5법칙》(최석두 역, 한국도서관협회)에서는 ‘랑가나탄’으로 표기하였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대로 ‘랑가나단’으로 표기한다.
②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 대서사시. 《라마야나》는 ‘라마 왕 행전(王行傳)’이란 뜻이며, 고대 영웅 라마 왕에 대한 전설을 담고 있다.
③ 문정순, 〈인도 도서관학, 도서관운동의 아버지 랑가나단〉, 이병목 기획·감수, 고인철 외, 《위대한 도서관 사상가들》(한울), 114쪽.
④ 문정순, 〈인도 도서관학, 도서관운동의 아버지 랑가나단〉, 이병목 기획·감수, 고인철 외, 《위대한 도서관 사상가들》(한울), 118쪽.
⑤ 랑가나단, 《도서관학 5법칙》, 최석두 역(한국도서관협회, 2005), 83쪽.
⑥ 김정근, 〈랑가나단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알고 넘어갈 것인가, 건너뛸 것인가〉, 제1회 도서관 문화강좌 “도서관사상가를 찾아서”(2001. 4. 12, 한국도서관협회), 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