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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신문[-]
어린이신문

   『어린이신문』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신문으로는 해방 이후 첫 번째 신문이다. 1945년 12월 1일 주간신문으로 창간됐다. 편집동인은 윤석중(尹石重), 임병철(林炳哲), 정현웅(鄭玄雄), 박계주(朴啓周), 채정근(蔡廷根)이었다. 편집인은 초기에 임병철이 역임했으나 47년 편집 겸 발행인으로 유명한(柳明韓), 주간에 김영수(金永壽)로 바뀐다. 편집동인이기는 했지만 『어린이신문』 창간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윤석중이었다. 『어린이신문』의 종간은 분명하지 않다. 기록상으로 『동아일보』 1950년 5월 20일자 「신간소개」기사에 “어린이신문 제173호 고려문화사 발행”의 기록 이후 신간 소식이 끊긴다. 아마 한국전쟁으로 인해 발간이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소장본은 1946년 12월 13일 제86호까지다. 
   『어린이신문』은 창간사를 통해 그 성격을 밝히고 있다.
   “자유---우리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우리 땅에서 우리 말을 우리 글을 못쓰고 신궁에 절하라면 절하고 이름을 고치라면 고치고 코 꿰인 소처럼 일본사람이 끄으느대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유입니다. 이 자유를 위해 우리 많은 동포들이 여러 곳에 흐터져 가진 고생을 하고 또 훌륭한 분들이 피를 흘리고, 감옥에서 고생하고 돌아가고 하였습니다.
   삼천리 아름다운 강산은 이제 우리 강산이오 넓은 논밭과 기름 진 벌판도 그리고 저 맑은 하늘도 우리차지입니다. 우리는 굼벵이생활을 버리고 꽃을 찾는 나비의 아름다운 생활을 해야 합니다.
   자유로운 여러 어린 동무들이어! 자유의 기념으로 고려문화사에서는 여러 동무들에게 가장 좋은 동무가 되고 가장 유익하고 재미 있고 또 바른 길을 가르쳐 훌륭하고 씩씩한 인물이 인물이 되게 하는 『어린이신문』을 내는 것입니다.
   이 신문은 일천만의 조선소년소녀 여러분의 참된 동무가 되고 좋은 선생이 되기를 바라 마지 않는 바입니다.”
   해방된 조국에서 그에 걸맞는 길 이른바 ‘바른 길’을 가르쳐주기 위한 목적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근대 아동신문의 시작도 바로 계몽운동의 일환이었는데, 해방공간에서도 그 목적은 여전히 유효하였다.
   『어린이신문』은 다양한 종류의 글과 그림, 노래를 꾸준히 실었다. 동요, 창작동화, 해외 명작동화, 만화, 역사, 국어교실, 어린이 참여 코너 등 회당 4면의 지면을 꽉 채우면서도 산만하지않고 읽기 편한 깔끔한 편집이 특징이다. 

김덕영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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