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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컬렉션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디지털화 자료 중 가치 있는 지식문화자원을 선별, 콘텐츠로 구축하여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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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재위: 1400~1418)은 강력한 중앙집권정책을 추진하면서 행정구역의 대대적인 개편을 시도하였다. 첫째,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아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州縣)의 통제를 받던 속현(屬縣을 아예 주현(主縣)의 영역에 합하여 독자성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둘째, 작은 고을 2-3개를 하나로 합해 하나의 큰 고을을 만들며 셋째, 목(牧)보다 아래 등급의 고을 이름에 주州가 들어가 있는 경우 천(川)·산(山)·양(陽) 등으로 바꾸게 하고 넷째, 가장 낮은 지위의 지방관인 종7품의 감무(監務)를 종6품의 현감(縣監)으로 격상시켜 지방관의 지위를 높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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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1424년(세종 6)에 새로운 전국 지리지를 편찬하라는 세종 임금의 명에 따라 1425년(세종 7) 경상도 감영에서 편찬한 경상도의 지리지로 1432년 세종 14에 완성되는 『신찬팔도지리지』 편찬의 주요 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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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일반적으로 ‘세종실록에 수록되어 있는 지리지’란 뜻의 「세종실록지리지」라 부르는데, 조선시대에는 임금을 비롯하여 누구도 이용할 수 없는 자료였다. 실록에 지리지가 수록된 경우는 『세종장헌대왕실록』이 유일한데, 지리지의 편찬이 세종 임금의 중요한 치적 중의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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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
1469년(예종 1)에 새로운 지리지를 편찬하라는 예종 임금의 명에 따라 같은 해 경상도 감영에서 편찬한 경상도의 지리지로 1478년(성종 9)에 완성되는 『팔도지리지』 편찬의 주요 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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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531년(중종 26)에 글자는 금속활자로, 지도는 목판으로 만들어 찍어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55권 25책 중에서 47권과 53권 2책이다. 1531년에 간행된 55권 25책의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완질본이 없을 정도로 희귀본이기 때문에 귀중본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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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완성된 1530년으로부터 150여 년이 지난 숙종(재위: 1674~1720) 때부터 새로운 전국 지리지의 편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다. 1679년 등 몇 번에 걸쳐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증보 간행이 시도되었고 1699년에는 새로운 전국 지리지의 편찬령이 내려졌지만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이와 같은 흐름은 영조(재위: 1724~1776) 때에도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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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
여지(輿地)는 ‘땅의 정보를 수레에 담듯이 정리했다’는 뜻으로 요즘에는 보통 지리地理라고 하고, 도서(圖書)는 지도와 지리서라는 의미다. 따라서 ‘여지도서(輿地圖書)’는 ‘우리나라의 지리 정보에 대한 지도와 지리서를 함께 수록한 전국 지리지’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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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영평현[지](永平縣[誌])
전시된 경기도의 『영평현[지]』는 건치연혁·성씨·산천·풍속·방리(坊里)·전부(田賦)·균세(均稅) 등의 순서로 되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비해 조세·경제·행정 관련 항목이 대폭 늘어난 『여지도서』의 기본적인 흐름을 잘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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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사찬 전국 지리지 [조선후기의 사찬 전국 지리지] 조선후기의 사찬 전국 지리지
전통시대 개인이 혼자서 전국의 고을 정보를 직접 조사하여 전국 지리지를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전국 지리지를 편찬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 첫 번째 학자가 유형원(1622~1673)이다. 그는 1656년(1657)에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을 기본으로 하면서 중국과 조선의 여러 자료를 수집하여 비교·검토한 후 일부를 첨가 하여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9권 10책의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를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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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사찬 전국 지리지 [조선후기의 사찬 전국 지리지]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는 ‘우리나라(東國)의 지리(輿地)에 대해 기술해 놓은 지리지(志)’란 뜻으로 유형원(1622~1673)이 1656년(효종 7)에 편찬한 후 1660년대까지 추가적으로 교정·보충한 전국 지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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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재위: 1400~1418)은 강력한 중앙집권정책을 추진하면서 행정구역의 대대적인 개편을 시도하였다. 첫째,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아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州縣)의 통제를 받던 속현(屬縣을 아예 주현(主縣)의 영역에 합하여 독자성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둘째, 작은 고을 2-3개를 하나로 합해 하나의 큰 고을을 만들며 셋째, 목(牧)보다 아래 등급의 고을 이름에 주州가 들어가 있는 경우 천(川)·산(山)·양(陽) 등으로 바꾸게 하고 넷째, 가장 낮은 지위의 지방관인 종7품의 감무(監務)를 종6품의 현감(縣監)으로 격상시켜 지방관의 지위를 높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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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1424년(세종 6)에 새로운 전국 지리지를 편찬하라는 세종 임금의 명에 따라 1425년(세종 7) 경상도 감영에서 편찬한 경상도의 지리지로 1432년 세종 14에 완성되는 『신찬팔도지리지』 편찬의 주요 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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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일반적으로 ‘세종실록에 수록되어 있는 지리지’란 뜻의 「세종실록지리지」라 부르는데, 조선시대에는 임금을 비롯하여 누구도 이용할 수 없는 자료였다. 실록에 지리지가 수록된 경우는 『세종장헌대왕실록』이 유일한데, 지리지의 편찬이 세종 임금의 중요한 치적 중의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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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
1469년(예종 1)에 새로운 지리지를 편찬하라는 예종 임금의 명에 따라 같은 해 경상도 감영에서 편찬한 경상도의 지리지로 1478년(성종 9)에 완성되는 『팔도지리지』 편찬의 주요 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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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531년(중종 26)에 글자는 금속활자로, 지도는 목판으로 만들어 찍어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55권 25책 중에서 47권과 53권 2책이다. 1531년에 간행된 55권 25책의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완질본이 없을 정도로 희귀본이기 때문에 귀중본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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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완성된 1530년으로부터 150여 년이 지난 숙종(재위: 1674~1720) 때부터 새로운 전국 지리지의 편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다. 1679년 등 몇 번에 걸쳐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증보 간행이 시도되었고 1699년에는 새로운 전국 지리지의 편찬령이 내려졌지만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이와 같은 흐름은 영조(재위: 1724~1776) 때에도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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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
여지(輿地)는 ‘땅의 정보를 수레에 담듯이 정리했다’는 뜻으로 요즘에는 보통 지리地理라고 하고, 도서(圖書)는 지도와 지리서라는 의미다. 따라서 ‘여지도서(輿地圖書)’는 ‘우리나라의 지리 정보에 대한 지도와 지리서를 함께 수록한 전국 지리지’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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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조선후기의 관찬 전국 지리지] 영평현[지](永平縣[誌])
전시된 경기도의 『영평현[지]』는 건치연혁·성씨·산천·풍속·방리(坊里)·전부(田賦)·균세(均稅) 등의 순서로 되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비해 조세·경제·행정 관련 항목이 대폭 늘어난 『여지도서』의 기본적인 흐름을 잘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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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사찬 전국 지리지 [조선후기의 사찬 전국 지리지] 조선후기의 사찬 전국 지리지
전통시대 개인이 혼자서 전국의 고을 정보를 직접 조사하여 전국 지리지를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전국 지리지를 편찬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 첫 번째 학자가 유형원(1622~1673)이다. 그는 1656년(1657)에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을 기본으로 하면서 중국과 조선의 여러 자료를 수집하여 비교·검토한 후 일부를 첨가 하여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9권 10책의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를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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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사찬 전국 지리지 [조선후기의 사찬 전국 지리지]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는 ‘우리나라(東國)의 지리(輿地)에 대해 기술해 놓은 지리지(志)’란 뜻으로 유형원(1622~1673)이 1656년(효종 7)에 편찬한 후 1660년대까지 추가적으로 교정·보충한 전국 지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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