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후기그 날의 낭만과 감동을 함께 나누어요.

  • 동영상(한려수도 따라 걷는 아트로드)

    동영상(한려수도 따라 걷는 아트로드)

    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39chul&logNo=220714809134

    배철 2016.05.20

  • 김약국 딸들의 고향집을 다녀 오다

    김약국 딸들의 고향집을 다녀 오다

    건강이 많이 회복 되었다. 작년 김장열차에 이어 지난 주말(5월 14~15 양일) 두 번째로 인문열차를 타고 통영과 하동을 다녀 왔다. "한려수도 따라 걷는 아트로드' 탐방을 위해 통영에 도착, 박경리 작가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무대인 통영 현장을 답사했다. 내겐 소설 속의 현장과 현장을 찾아 다니며 이야기의 내용을 복기해 보는 기회였다. 귀로에는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의 하동 소재 배경마을과 최참판댁에도 들렀다. 아울러 통영이 배출한 그리고 통영과 인연을 맺었던 많은 문인, 화가, 음악가들의 족적을 찾아 보는 소중한 기회도 갖게 되었다. 귀로에는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인공들 배경이던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최참판댁을 위시한 만들어진 마을'을 둘러 보았다. 하동 방문은 이번 탐사주제와 직접 관련이 없기에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한다. 이번 탐방에 열중하게 된 나의 자세는 당연이 소설 내용에 대한 내 나름의 독후감에 기인한다. 소설 "김약국의 딸들"은 비극의 주인공인 '가련한 한 어머니 한실댁의 슬픈 이야기'라는 한마디로 축약 된다. 딸만 내리 다섯을 낳았지만 그 딸들 한나하나를 노심초사하면서 애지중지 길렀다. 그러나 그 딸들 모두는 한스럽게도 어머니 한실댁이 원하는 길과는 엇나가는 방향으로 운명이 이어졌다. 하나 하나 불행으로 빠져드는 그 딸들을 바라보며 한실댁은 가슴 저미는 괴로운 삶을 살았다. 그도 부족해 마침내는 그 딸들로 인해 참혹하게 비명횡사한다. 서럽고 허망한 이야기다.    소설은 김약국 일가의 패가망신으로 이야기를 끝내 버리지 않고 독자들 각자가 나름의 결말을 이어가도록 설정하고 있다. 이런 설정 덕에 내 가슴을 너무 아리게 만들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섯 딸들 중 자기 주장이 가장 뚜렸하면서 심지가 굳고 명민한 둘째 딸 용빈과 졸지에 부모를 잃었지만 그런 든든한 용빈에게 의지할 수 있는 미성년의 막내 용혜가 이어 갈 이야기를 생각이 다양한 독자들 몫으로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소설은 '"부우웅." 윤선은 출항을 고한다. 멀어져가는 얼굴들, 가스등, 고함 소리, 통영 항구의 장막은 천천히 내려간다. 갑판 난간에 달맞이꽃처럼 하얀 용혜의 얼굴이 있고, 물기 찬 공기 속에 용빈의 소리 없는 통곡이 있었다. 봄은 멀지 않았는데, 바람은 살을 에일 듯 차다.'는 마지막 장면 묘사로 끝을 맺는다. 독자들은 용빈을 따라 덩달아 통곡을 하면서도 '서서히 내려가는 통영 항구의 장막'과 함께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부우웅 출항하는 윤선'과 함께 용빈과 용혜가 이어갈 다음 이야기를 각각 나름의 생각대로 써 내려 갈 것이다. 나도 청년 강극과 함께 용빈이 이어갈 이야기를 이리 저리 그려 보았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나선 이번 통영 탐방은 재미도 있었고 의미도 컸다. 그러나 탐방 후의 뒷맛은 아쉬웠다. 세병관 등 국가가 관리하는 소설의 배경은 그나마 원래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었지만 나머지 이야기 배경들은 아예 사라졌거나 남아 있더라도 변형 되어 옛모습을 찾기 어려웠고 어수선한 주변 분위기 때문에 느낌이 훼손되고 있었다. 소설 현장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사유재산 보호라는 제약이 비록 통영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일부 현장의 복원계획이 있는 것으로 전해 들었지만 복원이 아닌 새로 만들기가 되거나 리모델링이 아니기를 바란다. 작년 11월 김장열차를 타고 군산을 방문했을 때 목격한 군산 철길마을과 특히 구 거리의 복원현장 모습 때문이다. 그때 목격한 그 현장의 복원은 복원이 아니라 어설푼 리모델링으로 보였고 그 결과 역사적 현장은 사라지고 아예 무슨 영화 세트장처럼 변해 버렸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제는 제자리로 되돌리는 복원은 불가능해진 참혹한(?) 현장으로 보였기 때문에 통영의 복원사업에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소설 현장과 달리 곳곳에 설치된 시비들이 탐방객들을 즐겁게 만들고 있는 것은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그러나 의문이 있다.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문화예술인들을 아끼고 기리는 통영 시민들이라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통영에서 2년여 고난의 세월을 보낸  천재 미술가인 이중섭 화백의 자취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우리 일행이 통영 탐방 첫날 점심을 먹었던 식당이 그가 거처하던 곳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이중섭 화백과 관련한 제주의 이야기다. 서귀포시와 시민들은 짧은 기간이나마 전쟁 중 제주에서 피난생활을 했다는 인연을 있지않고 이중섭 화백이 피난살이하던 집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관람객에 공개하고 있다. '이중섭 미술관'을 건립했고 '이중섭 거리'를 만들었다. 제주의 문화예술인들은 벌써 십 수년째 이중섭 화백을 기리는 연례 추모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매년 가을 이중섭 미술관에서는 조선일보와 서귀포시 공동 주최로 이중섭 세미나(필자도 참석한바 있음)가 개최되고 있고 서귀포시와 한국예총 서귀포지부 공동으로 이중섭 예술제도 사생대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열린다. 문학의 도시, 예술의 도시인 통영에서도 이중섭 화백의 탄생 100주년인 올해를 그대로 보내지 않고 그를 기리고 기념하는 좋은 사업을 추진하기 바란다. 여기서 한 마디 간곡하게 보태고 싶은 말이 있다. 인문학 진흥사업인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는 2014년에 종료 된 [길 위의 인문학]의 후속 대체사업이다. [길 위의 인문학]이 많은 성과를 거둔 사업임에도 예산을 대폭 삭감함으로서 2015년부터는 삭감된 예산을 바탕으로 하여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사업을 대체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삭감된 소규모 예산의 한계 때문에 발전적 대체사업으로 추진 되지 못하고 인문학 진흥사업이라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뿐이다. 국가가 국민이 풍요로운 문화적 삶을 영위하도록 하려면 각종 문화사업과 함께 인문학 진흥사업을 계속 발굴해서 추진해야 한다. 추진중인 인문학 사업을 계속 심화 확대해 가면서 새로운 사업을 끊임 없이 발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성과를 걷우고 있는 기존 사업조차 축소하거나 폐기하는 것은 국가 문화창달을 위해서도 현정부의 역점사업인 문화융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인문학은 국민의 지적 소양을 깊고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삶의 질을 높히는 등 국민생활에 자양분을 제공한다. 정부는 국민을 일년 내내 책 한 권 읽지 않는 메마른 소양의 인간으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책 읽기의 생활화를 목적으로 하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인문학 진흥사업을 확대하는 것이야 말로 문화창달을 위해 필요하다.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사업의 대폭적인 확대 재편을 촉구한다. 끝.

    박종세 2016.05.17

  • 한려수도를 따라 걷는 통영 아트로드

    한려수도를 따라 걷는 통영 아트로드

    한려수도를 걷는 아트로드                                    2016. 05.15-16   신 용 섭   남쪽 바다가 넘실거리는 통영 아침을 가르고 새벽을 여는 아름다운 인문열차 마산행 KTX타고 대성관광버스로 삼군수군통제령이 있었던 통영으로 예향과 문향이 넘치는 현대판 문학의 산실   골목길마다 유명 문학계 인사들이 즐비하고 역사의 현장에서 아직까지 숨 쉬고 있는 양 착각을 부르고 있는 아름다운 항구를 감싸고 펼쳐지는 1박2일 인문열차 문학 투어   이중섭의 <황소>가 직접 그렸던 양철지붕 바다마을 식당의 조기 정식 점심   간청골의 역사의 중심지 <세병관> 오방색으로 단장되었던 벅수(장승)이 빙그레 수군의 깃발이 휘날리면 보수중인 통제령 지붕 위용은 제대로 간직한 채 빌고 빌어도 원망의 당산나무는 옆에서 400년 그대로 푸르른 하늘과 시소하면서  지키고      <김 약국의 딸들> 소설속의 골목길은 돌고 돌아 중심가 항남로에서 옛 충무고등 공민학교로 가서 박경리 선생님 여중생 옛 모습을 더듬어 보려고 가서 보니 건물은 문화원에서 청년회 사무실로 변해 가니 많은 격세지감이 느낍니다.    활터는 배수지로 명맥을 유지하고 박경리 선생님이 태어났던 집은 번지로 겨우 찾았으나 남의 소유로 바꿔 이름패만 담장에 적혀 있어요.   서문고개를 넘어 허물어진 남문 문루는 간 곳도 없이 초라하기 짝이 없고 서피랑 서포루는 통영의 푸른 바다가 제일 잘 보이는 곳으로 여행객에게 가장 시원한 소슬바람과 함께 사진 찍기가 가장 경치가 좋은 장소로 살짝 비겨 나와 자리 잡아 옛날에는 바로 벼랑 밑이 찰랑찰랑 거리는 바닷가 지금은 고즈넉한 간창골과 명정골을 가로지르는 낮은 고갯길   꽉 잡아도 잡히지 않으면서 애인이 잡지 않아도 저절로 잡혀지는 사랑의 줄다리기가  바로 지척인데 골목길 내려가니 제 2대 윤보선 대통령의 영부인 (공덕귀 여사님) 생가도 자리 잡고 명정골의 유명함을 더합니다.   이순신 사당인 충렬사가 북서쪽 검은 대나무를 가리면서 칼 차고 호령하시는 장군의 모습으로 100년 동안의 김구선생님을 비롯한 국무총리 이하 유명 인사들의 묵념을 받곤 했지요.   위에는 일정(日井), 월정(月井)을 합한 명정골(明井)이 바로 길 건너 2개 우물로 자리 잡고 바로 건너편 모퉁이에는 백석 시인의 <통영2>로 그리워 사모했던 난이에게 보냈던 연애시 비석이 길목을 잡아 오가는 현대 문학과 역사의 현장이 교차하는 모습이 바로 신호등과 함께 하고 있어요.   새미 골로 쭉 내려오면 호주 선교사 아담슨이 기린 충무교회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우리나라 제2의 봉래극장은 현재 교회앞 주차장으로 변해 버린 역사의 아이러니 하게 재현 되곤 하지요.   통영 우체국 (일명 청마 우체국으로 지칭)에서 앞 수예점에서 기거하던 이영도 시인에게 5000통의 연애편지를 보냈던 한국계의 로맨스의 대가인 청마 유치환 시인의 아우성이 지금도 <행복>으로 들리는 듯합니다.   항남가(별칭 명동골목)에는 초정 김상옥 생가에서 <어느 날> 이란 뼈를 깎고 다듬었던 처절한 몸부림이 통영갓 만드시는 아버님의 장인 정신을 본받아 전각, 조각, 시, 그림 등 만능 예술가로 베레모속에서 빙그레 파이프 문 얼굴이 바로 나올 듯 합니다.   한국 문학의 큰 강이오, 큰 별이신 박경리 선생님이 잠드신 묘소를 미륵산자락 아담한 자리를 많이 내 주신 산자락 주인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통영 앞바다가 환하게 봄날의 햇살을 삼키기 좋은 자리에 한국 문학계의 큰 어머님을 영원히 보살펴 주신 고마운 분에게 독자를 대신해서 큰 절을 드립니다.   20세기의 한국의 피카소로 불린 전혁림 미술관은 부자가 대를 잇는 오방색감을 다루는 반추상화 구상이 눈길을 끌고 퀴즈로 책과 커피 잔과 일출 목판 등을 선물해 주시고 통영 향토사 연구에 열성인 <길 문화 연대>와 통영 지역 <남도의 봄날>출판사 관계자 등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허기진 배를 아름다운 허브 향으로 꾸며진 정원에서 멍게 비빔밥으로 통영을 삼키고 청소년 수련관에서 어수웅 기자님의 <박경리와 백석의 삶과 문학>에 대한 진솔한 일화와 비교 강의에 경청하고 지친 다리를 끌고 고된 하루를 잠들어 봅니다.   둘째 날 (5/16) 통영 문학의 길을 떠나는 날 남망산자락 국제 조각전을 즐비하게 널어져 생동과 환희의 생명력을 상기하는 남성 누드 조각상과 지친 노동력을 회복하려는 몸부림 나무 조각 등 누나한테 보낸 초정의 봉선화 시비가 고스란히 자리 잡아 길손의 산책 발걸음을 묶고   이중섭에게 물심양면으로 보살펴 준 통영 최초의 김용주 서양화가가 돌아오는 길모퉁이에서 휴식의 자리를 내 줍니다.   바닷가 숲속에서 밤새 술로 목욕하던 문인들의 놀이터는 이제는 벌써 주택가로 자리매김하여 옛 정취는 추억의 되새김조차 힘들 지경으로 변했습니다.   <꽃>의 화신 김춘수 시인의 생가는 길가의 골목에서 주인 잃는 주택가 강아지가 불쑥 시인묵객을 맞이하는 구나.   골목길 새 생명을 불러일으킨 동피랑 벽화 마을에는 꼭대기까지 구경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관가와의 갈등으로 2년마다 새로운 그림의 발돋움조차 끊길 형편에 놓여 져 있다는 슬픈 이야기가 들리곤 합니다.   날개 있는 천사 그림위에 살짝 내 몸을 기대어 벽화속의 주인공으로 들어 와 앉아 사진으로 남기고 골목길 초로의 주름진 얼굴에서 피곤함을 하품으로 대신하고 바다의 내음을 감싼 물미역을 빨래줄 위에 얹어 사진작가의 먹잇감으로 빼곡 내미는 옥상위의 미역이 정감 납니다.   간청골 주전소 길에는 김용주 화가집과 주미 대사 김용식, 꽃신 김용익 화가의 형제 생가를 시립 미술관으로  따사로운 봄빛을 내리쬐는 동쪽 끝자락에서 자식에 대한 아버님의 간절하면서도 평범한 기도를 배웠고,   새미골목에서는 풍류와 시상이 어울린 일제와 해방이후 시대의 풍미한 예술인의 혼과 놀이 문화에 대한 제고가 재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깃들어져 있었습니다.   꿀빵과 충무김밥으로 통영 모든 가게가 도배하고 저마다 원조인양 맛과 멋을 자랑하지만 인터넷 카페로 댓글 순서대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텅 빈 가게 주인은 관광객을 살며시 엿들으면서 손짓, 발짓을 다해 보지만 인심은커녕 와 보지도 않으니 문화마당 항구 안으로 차는 줄줄이 이어져 주차대란을 방불케 합니다.      남재우의 <하동포구> 80리 노랫가락 비석이 섬진강 포구에 우뚝 서 오룡정 유허비는 말이 없는데 3일간 상선 수십 척이 오가던 선창가에는 말없이 흐르는 물길만 봐도 역사의 뒤안길이 간장 게장 점심으로 뒤돌아 보입니다.   하동 평사리 토지 문학관으로 발길을 돌리니 지리산 높은 산자락에 최 참판 집에는 <뫼에 농악대>가 풍악을 울리면서 지나가는 길손은 물론 문학도 가슴에 풍류를 껴 넣고 덩실덩실 춤사위가 역시 이방인 설레설레 흔드는 춤에서도 묻어 나옵니다.   평사리 문학관은 뒤로 하고 토지 촬영장으로 엮어진 세트장에서 최 참판 인양 억양리 들판을 호령해 보고는 천연 염색과 콩 유과도 뿌리치고 헐레벌떡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구례읍 지나 옛 승주땅 구레구역으로   3행시와 추천도서 선정의 이유를 듣고 우수자에게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님의 신간 <탐독>를 선물로 주면서 여행의 백미와 기쁨을 잠시 머무는 가운데 벌써 무궁화 열차는 종착역으로 우중을 달리면서 인사는 손 흔들고 마는 아쉬운 인문열차를 또 다시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다시 꼭 오르고 싶습니다.   끝으로 문체부와 재정 경제원 예산 편성 관계자는 일방적인 통상적인 예산 편성으로 천편일륜적인 예산 편성과 집행보다 전국적인 서민에게 독서의 희망을 주고 기차 여행의 신선한 배움의 의미를 주면서도 지친 삶의 활력소를 가미한 국립 중앙 도서관 예산 확보에 절대적인 지원을 대폭 많이 해서 꼭 서민들에게 필요한 실제적인 서민 여행 복지비 증액과 10-80대까지 골고루 독서로 만학에도 공부 기회를 확대해 주실 것을 거듭 촉구합니다.            

    신용섭 2016.05.16

참여후기 더보기
  • 우편번호 06579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 (반포동) / 문의전화 02-590-0551 팩스 02-590-0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