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지킴이  

                            

 

네댓 살 정도 된 여자아이가 신발을 신으면서 열람실 문을 향해 말합니다. “열려라, 참깨!” 문이 안 열리는지 다시 말을 합니다. “열려라, 참깨!”

 

우리 도서관의 시작은

  2003년 문화방송 ‘느낌표’ 프로그램과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및 제천시가 힘을 모아 함께 건립한 어린이 전용 도서관이 바로 내가 근무하는 ‘제천기적의도서관’입니다.

  우리 도서관은 한 살부터 이용할 수 있는 편안한 내 집 같은 도서관입니다. 바닥은 온돌마루로 되어 있고 방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흔히 열람실이라고 하는 곳은 책나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은 이야기 방, 지붕 꼭대기에서 이야기가 내려온다고 이야기탑, 성장과 지혜를 나타내는 우주나무 다섯나무극장, 그 밖에도 반달극장, 도란도란, 흙도 책이다, 아가방, 그림나라, 도움방 등이 있습니다. 방들의 이름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지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후원 속에서 새로운 방식의 도서관 운영, 새로운 도서관 문화의 창출 등 새로움을 추구하며 시작한 제천기적의도서관은 어린이들에게는 천국, 부모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육아 지원 시설 및 문화 활동의 중심 기지가 되기 위해서 정말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덕분에 언론에 많이 보도되기도 하고 찾아오는 이들도 많습니다. 어린이 책과 도서관에 대한 인식도 조금은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열람실 안의 모습을 조금 들여다보면

  우리 도서관의 열람실은 아이들의 놀이터입니다.

  “엄마~”하고 부르는 아이, 엄마를 잠시 잃어버려서 엄마를 찾는 아이의 울음소리, 뛰어다니면서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조용한 도서관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시끄러운 와중에도 책꽂이 사이에서 조용히 책만 보고 있는 아이, 똑같은 그림책을 펴서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 엄마랑 아빠와 함께 재미있게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 할아버지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몰두해서 듣고 있는 아이들, 언니가 읽어 주는 그림책을 재미있게 듣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음을 흐뭇하게 합니다.

 

도서관 주변의 풍경도 소개하면

  책을 읽다 도서관 밖으로 나오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도서관 앞에는 원두막과 디딜방앗간이 있습니다. 올 가을에는 그림책에서만 보던 둥근 박이 있는 초가지붕의 모습도 이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동아리인 ‘호랑이담뱃대’ 어르신들께서 어린이들을 위해 지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도서관 주변에 있는 땅에는 농사를 짓습니다. 철마다 농작물의 종류가 달라집니다. 흔히 볼 수 없는 목화, 수수, 메밀 등을 심어 잊혀져 가는 농작물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메밀을 베고 그 자리에 밀 씨를 뿌렸습니다. 밀 씨를 뿌리는 날, 아이들은 ‘호랑이담뱃대’ 할아버지들과 함께 밀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정성껏 씨를 뿌렸습니다.

  고구마도 캤습니다. 고구마를 캐던 날은 어린이시 동아리 아이들과 동아리를 지도하시는 선생님께서 고구마를 캐고 원두막에 올라가 시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지은 시들을 모아 11월에 ‘계수나무 시 낭송회’를 합니다.
 

    고구마 산

                          이지연

    도서관에서 고구마를 캤다.

    큰 고구마도 있고 작은 고구마도 있다.

    먼저 호미로 브이 자 모양으로 캐고

    고구마를 꺼냈다.

    고구마를 신나게 캐다보니

    커다란 고구마 산이 생겼다.
     

  도서관 뒤편에는 할머니께서 야생화를 키우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손자를 데리고 도서관에 다니시다가 도서관 뒤편 빈터에 야생화를 심고 키우게 되신 분입니다. 예쁘고 깔끔하게 정돈된 꽃밭은 아니지만 할머니의 정성으로 만든 고마운 꽃밭입니다.

 

내 이야기도 궁금하면

  처음부터 기적의도서관과 함께 한 나는 이곳을 위해 애쓴 모든 분들께 가끔 눈물이 나도록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도서관학과(현 문헌정보학)를 졸업하였지만 도서관에서 일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도서관학이 흥미롭지 않았고 취업의 문이 좁았던 시기에 졸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학교를 졸업한 지 십년도 훨씬 넘어서 어린이도서관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린이도서관과 관련해서 일하게 된 동기는 내 아이들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린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시작한 어린이 책 읽기는 나와 내 아이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어린이 책에 대한 필요성이 점점 더 커졌습니다. 시립도서관이 있기는 하지만 책이 너무 낡았고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의도서관 건립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다짐을 했습니다. ‘꼭 좋은 도서관을 만들어야지.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좋은 책과 함께 시작할 수 있도록 말이야.’라고 말입니다. 사명감(?)에 불타서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도서관 일에 매달렸습니다. 내 아이들 때문에 시작한 일이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엄마를 도서관에 빼앗겨 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이 무렵에 딸아이의 소원이 엄마가 도서관을 ‘끊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말입니다.

  기적의도서관에서 보낸 시간이 많아서일까요?

  어느 날 식당에 갔는데 다섯 살이나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나를 보고 “어! 기적의도서관이다.”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합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웃으며 생각합니다. ‘그래, 난 기적의도서관이다. 네가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살짝(?) 부담스러워집니다.

  도서관에서 정신없이 일할 때 많은 도움을 주신 언니가 내게 말합니다.

  “명자 씨! 미국 도서관에 갔는데 나이 지긋하신 분이 사서로 있으니까 아이들에게 친근감과 안정감을 줄 수 있어 참 좋더라. 명자씨도 그렇게 해.”

  그래서 또 생각합니다. ‘나도 나이 지긋하도록 이곳에서 사서 일을 해야 하나?’ 하고 말입니다.

  그림책 중에 패트리샤 폴라코의 <할머니의 조각보>라는 책이 있습니다.

  러시아계 유태인의 전통과 가족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따뜻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증조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조각보는 가족사의 중요한 순간에 빠질 수 없는 귀한 물건입니다. 그래서 그림책의 그림도 조각보는 원색으로 그 이외는 모두 목탄으로 그린 단색의 그림입니다.

  내 아이를 포함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 좋은 것들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할머니의 조각보가 가족사의 중요한 순간에 빠질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듯이 책과 도서관이 아이들 삶의 중요한 순간에 빠질 수 없는 귀한 것들이 되기를 말입니다. 그래서 삶 전체가 흑백과 같이 드레질지라도 책과 도서관만큼은 희망의 원색이 되어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서들에게 한 마디 해도 되면

  어린이도서관, 할 일 정말 많습니다.

  어린이도서관이 들풀처럼 퍼져가고 있고, 도서관 이용이 생활화된 이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된다면 좋은 도서관의 필요성은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

  그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도서관을 지키고 있고 지키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내 옆의 누군가가 아니고 바로 내가 말입니다.

    글|이명자ㆍ제천기적의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