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지킴이  

                            

 

 


  “정말 네가 도서관에서 일하냐? 의외다! 의외야~”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 동기들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하나같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 게다가 어린이도서관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면 더더욱 놀란다.

  문헌정보학과를 선택했을 때도 정말 도서관에서 일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한참 여고생에게 유행했던 로맨스 소설 대신 괴테 소설을 즐겨 가지고 다니던 나를 오해(?)하시고, 담임선생님이 문헌정보학과를 적극 추천하셨다. “뭘 배우는데요?”라는 질문에 “거기 가면 책 많이 읽을 수 있어.”라고 덤덤하게 하신 말이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이러한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사서의 시작은 나를 이렇게 어린이 도서관에 앉혀 놓았다.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그것도 어린이도서관에서 일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 당시는 아이들이 좋아지지가 않았었다.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였다. 항상 가까이 지내는 벗들 중에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고 어울리기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길 가는 아이들하고 이야기라도 나누고 있노라면 나는 멀찍하니 떨어져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하는, 어린이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어정쩡한 ‘어른’이었다.

  놀라운 것은, 어린이도서관에서 몇 년 동안 일해 오면서 나도 서서히 아이들 눈높이로 그들을 보고,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콧물 질질 흘리면서 오는 친구들도 밉지 않고, 그들의 코를 슥~ 손으로 닦아 줄 정도가 되었다. 자주 보이는 친구들이 힘없이 도서관에 오면 “오늘 무슨 일 있었니?”하고 걱정스런 얼굴로 묻는 그들의 친구가 자연스레 되어 가고 있다.

  사서라는 직업에, 어린이라는 대상에 특별히 관심이 없던 내가 지금은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도서관이 좋고, 사서라는 직업이 좋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다.

  고집불통에다 자기만 아는, 시끄러운 존재…. 한동안 내가 알아오던 아이들의 의미가 비로소 이 도서관을 통해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감춰져 있는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을 때도 내가 아주 작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얼마나 놀랐던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10배는 유연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이 애들이 정말 천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얼마나 설레었던가.

  이러한 매력적인 존재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꿈을 키워 가는 곳이 바로 여기 도서관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이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꿈을 키워 가고 성장한다고 하지만, 이와 동시에 가장 먼저 내가 이 도서관을 통해, 사회를 꿈꾸고 진정한 성장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아침에 출근하면 도서관을 슬렁슬렁 한 바퀴 돌아다닌다. 3년 전 도서관을 개관할 때 급히 밤 새워 만든 환경판과 안내문들, 서가에 든든히 자리 잡고 있는 15,000여 권의 책들이 제법 손때 묻어 반들반들해져 도서관을 지키고 있다. 나중에 내가 나이 들어 퇴직을 하고 나서도, 나의 손때가 묻은 이곳이 잘 있는지, 어떤 친구들이 오는지 궁금하여 매일 오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올해는 특히 나에게나 우리 도서관에 있어서는 아주 의미 있는 한 해이다.

  안산의 작은도서관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조직하였고, 처음으로 마을의 작은 공원에서 도서관축제도 열었다. 이제까지 도서관 안에서만 친구들을 맞이하다가 야외로 모두 손잡고 나가서 웃고 떠들고 한바탕 떠들썩하게 축제를 열었는데, 나에게는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이렇게 필요로 하고, 즐거워하는 곳을 더 잘 꾸려 나가야겠다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11월에 문을 여는 상록어린이도서관과 단원어린이도서관의 개관식에도 우리 작은도서관들이 모두 발 벗고 나서 한바탕 동네 축제를 열기로 하였다. 공공도서관과는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렇게 나란히 서서 함께 어우러지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공공도서관은 작은도서관을 아우르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작은도서관들은 공공도서관이 섬세하게 서비스하지 못하는 지역과 대상을 공략하여, 어느 곳 하나 도서관의 혜택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이런 희망을 이 작은도서관에서 나는 꿈꾸고 있다.

  도서관을 통해 정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재정상 취약한 작은도서관을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하기 위하여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하여 배우고 있다.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나도 모르게 몸에 베이고 있는 중이다. 이 스펀지 같은 흡수력에 나 자신도 정말 놀라고 있다.

  도서관을 통하여 나라는 인간이 많이 성장하였다. 아이들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었고,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시민운동을 배우게 되었고, 함께 어우러지는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도서관을 통해 사람들을 보고, 사회를 보면서 성장하고 있다.

    글|정은주ㆍ안산시근로자시민문화센터 어린이도서관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