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인터넷을 통해 활발해진 북 아트 커뮤니티

  “하나의 구조는 1,000점의 드로잉과 같다.” 에이어티스 릴스트롬은 매체의 복잡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티스트 북이란 북 아티스트들이 만든 책을 말한다. 북 아트는  20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미술사조의 하나로서 판화, 출판, 북바인딩, 활판 인쇄, 디자인, 그래픽 아트 등에서 시작하여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매스 미디어로 그 영역이 넓어졌다.

  음식에도 퓨전 스타일이 있듯이 예술 분야에서도 서로 연계되어 있는 분야의 통합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아티스트 북을 만드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문화관광부 후원으로 ‘서울 국제 북아트전’, 성남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성남 국제 북아트 페어’ 등이 열렸고, 여러 가지 전시회나 강좌 등이 북 아트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북 아트가 급속도로 퍼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세계 최강의 인터넷 국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터넷이란 가상공간은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의 속도를 더욱 빨라지게 했고, 재현과 소유에 관한 논의를 더욱 복잡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인터넷은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는 북 아트의 모습을 전 세계가 발맞추어 나가게끔 길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외국의 경우를 보면, 서로 다른 나라의 작가들이 인터넷을 이용하여 공동 작업을 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 한 예로 호주 작가인 다이안 포그웰은 독일의 울리케 스톨츠라는 작가와 인터넷으로 공동 작업을 했는데, 그들은 서로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 울리케는 독일의 대표적인 북 아티스트로 독일의 ‘아름다운 북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제1회 서울 세계 북아트 공모전’에서도 입선하였다. 독일의 Braunschweig 소재, Huchule fur Vildenkunste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를 강의하며, 가상공간에서 여러 명의 작가와 공동 작업을 한다.

  이렇게 60년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현실화 되면서, 앞으로는 인터넷상의 전 세계적인 커뮤니티를 통해 실시간으로 각 나라의 북 아트 현황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가 웹진(인터넷 잡지)인데, 각 나라를 대표하는 북 아트 웹진 하나만 있으면 일일이 전 세계 작가들의 사이트나 협회를 방문하지 않아도 전시 소식이나 페어, 공모전, 작가들의 포럼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는 영국에서 발행되는 ‘북 아트 뉴스레터’를 받아보면서 매달 미국과 유럽의 북 아트 소식을 접하고 있다. 물론 국내에서 개최되었던 ‘서울 세계 북아트 페어’ 소식도 기사와 광고로 이 뉴스레터에 실렸고, 편집장인 사라 보드만이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아티스트 북이란?

  북 아티스트들이 일반 상업적 출판업자들의 책과 아티스트 북을 구별하는 하나의 방법은 그 독특한 개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작가들이 우리가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기발한 오브제를 가지고 창조적인 작업을 해 나가고 있다. 이들은 북 아트 작품과 일반 출판물 사이에 역동적인 차이점을 창조해냄으로써 일반 책과 아티스트 북을 구별한다.

  아티스트 북을 ‘아티스트에 의해 창조된 책’이라고 불명확하게 규정지으려면, 적어도 가능한 의미와 기능에 관하여 더욱 소상하게 설명할 필요가 반드시 있다. 우리는 평범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꾸며진 책이나 평범하게 인쇄된 책을 결코 아티스트 북 작품이라고 하지 않으며, 리브로 다티스트(Livre dartiste)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많은 아티스트 북은 책 그 자체를 매개로 시공을 초월하여 독자에게 어떤 개인의 경험을 드러내고 전달해 준다. 이 책들은 일반적인 텍스트나 표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책 속에 있는 우연한 공간, 간격 등을 통해 독자와 교류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책들 자체의 일생은 작자의 삶을 넘어서 어떤 영향력 있는 자율성을 가진다. 책 스스로 존재하고 순환하는 능력은 움직이지 못하는 책이라는 물체에 어떤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내가 잃어버린 책, 찾은 책, 기원은 불분명하나 나의 소유가 된 책 등은 책이 다른 예술 작품과는 달리, 독립성과 유동성을 가지고 이 세계에 존립할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천경자의 작품이나 이중섭의 작품을 내가 쌓아둔 소지품 더미에서, 혹은 헌책방의 책장 선반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가? 아니다. 다른 예술 작품들은 그 작품이 전시될 공간이 마련되고 관람자가 그 공간에 관람의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지 않는 한,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기 어렵다. 물론, 아티스트 북 중 귀중한 책으로서 잘 보관되어진 경우라면 이러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책들이 누리는 자유로운 삶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도 후에 우연한 장소에서 발견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 아닌가.

 

책이 주는 여러 가지 교감과 북 아트

  책은 배터리를 갈 필요도, 소프트웨어처럼 업그레이드 할 필요도, 칩처럼 바꿔 끼울 필요도 없이 각각의 새로운 만남을 이루어 간다. 이러한 책의 영속성(durability)은 그 가치를 스스로 드러내 주는 것이며, 코덱스 형식의 우아한 단순성(elegant simplicity)은 이 영속성의 일부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책의 영속성의 가장 핵심부에 위치하는 것은 바로 책이 제공하는 정보이며, 더구나 이 정보를 직접적이고 친근한 방식으로 전달해 준다는 것이다.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에서 화자인 록우드는 어린 캐서린 언쇼의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책에 적어 놓은 메모를 읽게 되고, 순간 그 책의 옛 주인이었던 캐서린 언쇼와 교감하는 듯한 느낌을 가진다. 도서관의 책을 읽을 때, 누군가가 책의 빈 가장자리에 써 놓은 메모를 읽어 보고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이러한 생각을 했구나하고 생각했던 경험, 누군가가 내가 공감하는 부분에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 놓은 것을 보고 이렇게도 생각이 통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껴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책이 주는 정보 외에도 이 책을 읽었던 누군가와의 교감, 혹은 책을 쓴 작가와의 교감이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서 함께 이루어진다.

  최근 전자 북의 도래로 책 읽기에 혁명과도 같은 일이 발생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종이책의 촉감이 주는 친근함과 정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또 일회성 소모품이 주종을 이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때로 일상적인 사물에서 큰 의미와 희소성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대량 소비 사회 속에서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북 아트의 출현이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북 아트를 시도할 수 있으며, 그 출발점은 바로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투박한 솜씨로나마 정성껏 카드를 만들어 친구에게 보내는 일, 여행을 다니면서 일지를 작성하거나 간단한 스케치를 남겨 스크랩해 놓는 일, 손수 아이 앨범을 예쁘게 작성하는 일, 편지를 색다르게 쓰는 일 등등 …… .

  마치 우리가 어머니의 빛바랜 옛 사진 뒤에 씌어진 메모나 일기장에서 그녀의 필체와 사연을 발견하고, 지난날의 추억과 기쁨을 되새기며 어머니의 영혼과 교감을 느끼는 것처럼 북 아트의 기원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기에 그 공감의 폭은 더욱 큰 것이다.

  이제 북 아트라는 미술 장르는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전 세계에서 활발히 분야와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단지 과거의 해묵은 이론과 복잡한 역사 속에서 헤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앞선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직업을 8번 바꾼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한 가지 직업으로 평생을 이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기에 세상은 너무 빨리 변화하고 새로운 지식과 정보는 우리를 한 자리에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러니 앞으로 다가올 제 2의 인생(Second Life)이나 제 3의 인생(Third Life)에서는 북 아트를 접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글|김나래ㆍ대한북아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