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서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도서관들은 대출 책 수과 함께 대출 기한(또는 반납 기한)이라는 대출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이는 공연히 이용자에게 불편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장서를 모두가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1) 의도이다. 따라서 대출 기한이란 빌린 책을 정해진 기간 내에 되돌려 주겠다는 도서관과 이용자와의 소중한 약속이라 할 수 있다. 일부러 반납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도서관의 책을 빌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처음부터 그런 나쁜 목적을 품는 사람도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통상적으로는 대출 사실을 잊고 지내다가 연체자라는 불명예스런 호칭을 얻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먼저, 지난 몇 년간 해외 토픽으로 보도된 지구촌 도서 연체자들의 갖가지 사연을 들어보자.

  

연체 도서의 귀환

  영국 콘월(Cornwall)의 캠본(Camborne)도서관에서 1948년 9월에 대출된 ‘The Histories of Launceston and Dunheved’란 책은 53년만인 지난 2001년 3월에 돌연히 반납되었다. 대출자는 발신인 불명의 봉투에 책과 함께 11.48파운드를 동봉하였는데, 실제 53년간의 연체료는 2,315파운드를 지불해야 마땅했다.2)

  2002년 6월에 제임스 V. 브라운 도서관은 개관 95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Who Has The Longest Overdue Book?’이란 이색 콘테스트를 개최하여 펜실베니아주 휴이빌(Hughesville)에 사는 테레사 스투가르트(Teresa Stugart) 씨에게 왕관을 수여했다. 그는 2002년 6월 자신의 집에서 대출 기한이 1942년 9월 30일인 ‘Delilah’라는 책을 발견하고 도서관에 반납했는데, 아마 할머니나 고모할머니가 이 책을 빌린 후 반납해야 하는 걸 깜빡 잊어버린 것으로 추정하였다. 도서관 측은 60년 만에 돌아온 책의 연체료 5,460달러를 면제했다.3)

  캐나다의 세인트메리대 도서관에서는 2002년 어느 날 누군가 흘린 책을 발견하고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이 책은 미국 미시건의 앤아버 공공도서관에서 대출되어 74년간 연체된 것이었다. 마드리느 르페브르(Madeleine Lefebvre) 사서는 이 책의 기구한 역사를 모르는 누군가가 벼룩시장에 내놓은 것으로 짐작했다.4)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의 도날드 B. 킹(Donald B. King) 교수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대학도서관에서 대출했던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의 ‘De utraq(ue) Verborum ac rerum copia lib. II.’란 책은 60여 년 만에 반납되었다. 킹 교수는 57년간 이 책을 갖고 있다가 1997년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후, 그의 딸 캐서린 킹(Kathryn King)이 보관했다고 한다.5)

  2005년 1월, 미국 헌스빌(Huntsville)의 빌리 호스(Billy Hawse) 씨는 부모의 유품을 정리하다 대출 기한이 1927년 4월 14일인 ‘The Book of the National Parks’란 책을 발견하여 애크런-서밋 카운티 공공도서관에 반납하였다. 대출 기록에는 그레이스 할러데이(Grace Halladay) 라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호스 씨는 그가 선모친(先母親)의 친구분일 것으로 추측했다. 도서관은 78년 만에 돌아온 책을 환영하며 연체료 549달러를 기꺼이 포기했다.6)

  미국 뉴저지에 사는 조엘 P. 슐레진저(Joel P. Schlesinger) 씨는 1981년 2월에 버팔로의 오차드파크도서관에서 ‘The Joy of Camping’이란 책을 대출했다.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던 그는 2005년 4월 다락방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24년 전에 대출한 도서를 발견하고는 해당 도서관에 전화를 걸어 반납과 함께 연체료를 지불하겠다고 밝혔다. 도서관장은 한 책 당 1일 연체료는 25센트이고 장기 연체의 경우 최고 15달러를 내면 된다고 답했지만, 슐레진저 씨는 학창 시절 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 도서관이 현재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연체료에 상응하는 2,190달러를 기부했다고 한다.7)

  1945년 뉴질랜드의 로토루아 공공도서관에서 대출된 ‘The Punch Library of Humour’라는 책은 무려 61년이 흐른 후 마리 스셰임(Marie Sushames) 씨의 다락방에서 발견되었다. 스셰임 여사는 85번째 생일날에 6,114달러의 연체료 고지서를 받게 되었지만, 도서관 측은 가장 오래 연체된 도서로 전시하겠다며 연체료를 면제하는 조치를 취했다.8)

  미국 뉴욕의 윌리엄 바실리(William Vassily) 씨는 ‘The Baby Whale, Sharp Ears’라는 어린이 책을 2006년 9월에 연체료 440달러와 함께 반납했다. 아홉 살이던 1946년에 그의 부모가 뉴잉글랜드도서관에서 대출한 이 책은 포틀랜드에서 뉴욕으로 집을 옮길 때 이사 박스 속에 묻혔다가 60년 만에 발견된 것이다. 연체료는 상한선인 10달러만 지불해도 상관없었으나, 그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도서관을 찾고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에서 60년분의 연체료를 모두 합산하여 도서관에 기탁하였다.9)

  미국의 루이스 스완슨(Lois Swanson) 씨는 고등학생이던 1938년에 숙제를 위해 캘리포니아주 존 F. 케네디 도서관에서 ‘The History of England & Great Britain’이라는 책을 빌렸다. 그 해에만 두 번 이사를 한 탓에 박스에 넣어둔 책을 잊고 지내다가 68년이 흐른 2006년 초에 뒤늦게 도서관에 반납했다. 장서 관리 시스템에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책이었기에 도서관 측에서는 연체료 부과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만약 정상적으로 1일 5센트로 계산한다면 연체료는 1,200달러에 달했을 것이라 한다. 스완슨 여사는 너무 오랫동안 책을 갖고 있었던 사실을 미안하게 여겨 20달러를 도서관의 어린이 기금으로 기부했다.10)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중학교 교사인 로버트 뉴러넌(Robert Nuranen) 씨는 47년 전에 대출한 도서를 자기 집 다락방에서 발견하여 2007년 1월에 171달러의 연체료와 함께 반납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인 1960년에 미시건주의 행콕 공공도서관에서 ‘Prince of Egypt’란 책을 대출했으나, 어머니가 청소를 하면서 다른 곳에 옮기는 바람에 제때 반납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편 수 주베이나(Sue Zubiena) 사서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아무리 늦더라도 반납해야 한다는 모범 사례로 적극 홍보하겠다고 밝혔다.11)

  이와 같이 외국의 신문에서 보도되는 장기 연체 도서의 반납 사연은 대개 미담으로 귀결되는 사례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도 별반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전북 정읍시 신태인중학교를 1976년에 졸업한 권아무개 씨는 32년 전 학교 도서실에서 대출한 도서 10여 권을 반납하지 않아 항상 마음에 빚을 지고 있었다면서 책값 100만원을 소액환으로 2005년 5월 모교에 기탁했다. 그는 학창 시절 도서 관리를 맡아 못다 읽은 책을 마저 읽으려고 집에 가져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일부가 집에 남게 됐다는 사연과 함께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마음의 짐을 벗으며 책값을 동봉합니다.”라고 밝혔다.12)

  2005년 11월에는 20여 년 전 한양대학교를 다닌 곽아무개 씨가 재학 중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군 입대 관계로 반납하지 못했던 과거를 뉘우치는 의미에서 책값 20만원을 소액환으로 보내왔다. 곽씨는 보낸 돈으로 후학들을 위한 도서 구입에 써 달라는 사연을 적었으며, 도서관 측은 대학본부에 문의한 결과 곽씨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는 사실을 파악해 행정학 전공 도서 8권을 구입했다.13)

  물론 모든 장기 연체 도서가 아름다운 사연만을 전해 주는 건 아니다. 전직 장관을 지냈던 K대학교의 김아무개 교수는 도서관에서 다산 정약용의 청관총서와 조선시대 상례와 혼례 등을 기술해 놓은 고서 2권을 대출하여 도서관의 계속된 반납 독촉에도 불구하고 2003년 9월 퇴임할 때까지 30여 년 동안 반납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전 교수는 대출 도서를 분실했을 경우 2배로 배상해야 한다는 대출 규정에 따라 200만원을 배상했다.14)

  이렇듯 앞으로도 도서관에서 대출된 책이 수십 년 만에 반납되거나 또는 기금의 형태로 돌아오는 사연들은 심심찮게 들려올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가장 오랜 기간을 거쳐 도서관으로 돌아온 책은 무엇일까? 2002년판 기네스북에 따르면, 코로넬 로버트 월폴(Colonel Robert Walpole)이 1668년에 캠브리지의 시드니 서섹스대 도서관에서 대출한 ‘Archbishop of Bremen’이란 책을 3세기가 흐른 뒤 존 플럼(John Plumb) 교수가 노퍽(Norfolk)의 마르크스도서관에서 발견하여 되돌려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288년간의 연체료는 부과되지 않았다고 한다.

 

도서 연체는 범죄 행위

  국내에는 ‘사라진 도서관’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The Library Policeman’은 작가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중편소설이다. 주인공 샘 피블스는 연설문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도서관에 가는데, 도서관장은 반납일을 어길 경우 도서관 경찰을 보내겠다고 경고한다. 피블스는 대출한 책의 도움으로 성공적인 연설을 이끌어내나 그만 책을 잃어버리고 반납 기한을 넘기게 되어 점점 기묘한 사건으로 빠져든다. 이 소설은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기한 내에 반납하지 않는 아이에게 롱코트를 입은 ‘도서관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처벌을 내린다는 구전을 바탕으로 했다. 킹은 자신의 아들이 도서관 경찰을 두려워한 나머지 도서관에 가는 것 자체를 꺼리는 데 착안해 집필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도 도서관 자료를 반납하지 않는다고 공권력(?)이 개입할까? 다음의 사례들을 보면 적어도 미국 사회는 그런 것 같다.

  2002년 1월 13일, 플로리다의 한 여성이 플로리다의 클리어워터 공공도서관에서 대출한 어린이 책과 비디오테이프 6점을 16개월이 넘도록 반납하지 않아 경찰에 넘겨졌다. 다만 그가 임신 7개월인데다 다섯 살과 여섯 살짜리 자녀를 돌봐야 하는 관계로 가족으로부터 연체료 127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했다. 여섯 달 전에도 같은 도서관의 이용자가 80달러의 연체료를 내지 않아 유치장 신세를 진 바 있다. 도서관은 이런 일을 계기로 100여 권이 넘는 연체 도서가 속히 반납되리라고 전망했다.16)

  2002년 4월, 필라델피아의 한 여성은 도서관 책을 연체했다는 이유로 유치장에서 3일을 보내야 했다. 2년 전 해즐턴 공공도서관에서 빌린 3권의 책의 연체료는 120달러에 이르렀다고 한다. 도서관장은 그가 정상적으로 반납했다면 이런 고초를 겪지 않았을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17)

  미시건의 베이카운티 도서관 위원회에서는 상습적이고 고의적인 연체자를 가려내어 법적인 책임을 지울 것이라는 내용의 의결안을 2004년 11월에 통과시켰다. 한 이용자는 73권의 SF소설을 대출하여 1년이 넘도록 1,190달러를 연체하고 있는 등 1년간 체납된 연체료만도 25,000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프레데릭 J. 퍼프하우젠(Frederick J. Paffhausen) 관장은 연체료는 곧 주민의 세금이라고 규정했다. 왜냐하면 도서관에서는 미반납 되어 서가에 없는 자료를 대체하기 위해 동일한 자료를 새로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8) 이에 앞서 2001년 9월, 놀란카운티 도서관에서도 같은 이유로 대출 도서의 연체를 범죄 행위로 취급할 것임을 공표했다.19)

  워싱턴의 벌링턴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한 이용자는 연체료 150달러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2005년 4월에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음에도 수갑을 채웠다며 과잉 체포 논란을 제기했다. 도서관 측은 책을 돌려받기 위해 편지를 보내고 일곱 번씩이나 전화를 걸었던 건 사실이나 도서관에서 경찰을 보낸 건 아니라고 항변했다.20)

  2006년 6월, 스터링도서관에서 대출한 도서를 반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이용자가 유치장 신세를 졌다. 베이타운시 관계자는 반납 독촉장과 118달러의 연체료를 고지했지만 한 달 동안 아무런 답변이 없어 부득이 입건했다고 말했다. 그 이용자는 이사를 하는 바람에 독촉장을 받지 못했다고 호소하고 연체료와 함께 과태료 50달러를 납부했다.21)

  같은 해 7월에는 데이비스카운티 도서관으로부터 부과된 792달러의 연체료를 체납한 23세의 한 여성이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피테 자코모(Pete Giacoma) 관장은 이 사례가 도서관 자료의 반납을 촉진하는 동기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전했다.22)


<표 1> 필라델피아 공공도서관이 조사한 연체 사유 Top 10 (無順)

1. “이미 반납했다구요!”
2. “동생이 내 대출증을 사용해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3. “빌린 적이 없습니다.”
4. “이사하는 과정에서 사라져 책을 찾을 수가 없네요.”
5. “차 안에 책을 두었는데 누가 훔쳐 갔어요.”
6. “이혼하면서 내 전 남편(전 처)이 갖고 갔습니다.”
7. “연체료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8. “얼마 전에 개인파산을 신청했습니다. 변호사에 따르면 이제 반납할 책임이 없다고 합디다.”
9. “나는 지금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10. “무료 도서관(free library)이라길래, 원하는 기간 동안 책을 갖고 있어도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반납 독촉의 아웃소싱

  반납을 독려하기 위한 최근의 경향은 채무추심회사에 연체 업무를 위탁하는 것이다. 도서관에 대한 기부는 점점 줄어드는 반면 자료 구입비는 증가하는 실정이어서 미국의 많은 공공도서관들이 이처럼 강경한 수단을 도입했다. 예컨대 뉴포트 뉴스 공공도서관에서는 연체자는 총 이용자의 1%에 불과하지만 지난 5년간 손실로 처리된 자료의 총액은 40만 달러로서 거의 연간 자료 구입비와 맞먹는다는 것이다. 리카운티 공공도서관에서도-총 12,000달러에 달하는-연체된 자료를 부디 반납해 달라는 도서관 직원들의 공손한 부탁을 이용자들이 무시하다시피 하자, 발상을 전환하여 채권추심회사에 반납 업무를 위탁했다.

  반납 대행 의뢰를 받은 에이전시에서 연체자들에게 신용 기록에 오점이 남을 수 있다는 내용의 경고문을 발송하여 반납에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24) 아예 도서관 연체자 해결을 전문으로 하는 대행사까지 생겼을 정도인데, 대표적으로 ‘Unique Management’라는 회사는 750개 이상의 도서관들을 회원으로 확보하여 2005년 한 해에만 6,400만 달러에 이르는 연체료와 장서를 회수했다고 한다. 물론 도서관에서는 연체자 1인당 8.95달러를 대행 수수료로 지불하게 된다.25)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학도서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뉴사우스웨일스주의 5개 대학도서관들이 2004년 한 해에 부과한 연체료가 278만 달러에 달할 정도로 대출한 책을 제때에 반납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대학도서관에서는 반납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용자들에 대해서는 에이전시에 반납 독촉 업무를 넘기고 있다.26)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이러한 제재 수단이 대출 도서의 연체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을까? 문제는 도서관계 내부에서도 에이전시의 개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프린스톤 공공도서관의 레슬리 버거(Leslie Burger) 관장은 도서관 장서의 손실은 어느 정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에이전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대행사의 독촉이 이용자들로 하여금 도서관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줄 것이라고 지적한다.27)

 

한국의 도서 연체 실태

  관외 대출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대출된 도서의 연체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지 않는 도서관은 드물 것이다. 우리나라의 도서관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의 한 공공도서관은 연체 도서를 회수하기 위해 독촉 전화를 하느라 평균 하루 2시간 이상 매달려야 하기에 다른 업무에 차질이 빚어진다고 호소한다. 연체자에게 전화를 걸면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짜증내는 사람들이 많아 사서들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단다. 그러나 도서관으로서는 연체자들에게 부과할 수 있는 제재 수단이 연체 기간만큼 대출을 정지하는 게 고작이어서 연체를 줄이는 데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의 관계자는 “연체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면 독서 인구가 더 줄어들 것 같아 따로 제재 방안을 마련할 계획은 아직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28)

  허나 무조건 연체료가 대출 정지보다 반납을 촉진시키는 데 효과가 높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1일 100원에 상한선을 2만원으로 연체료를 부과하고 있는 서울대 도서관에서는 연체율 감소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29) 그래서 대학원생에게는 책을 반납하지 않으면 논문 제출을 할 수 없도록 하고, 학부생에 대해서는 학적과에 증명서 발급 보류를 요청하고 있다. 고려대 도서관의 한 관계자도 “연체료 부과는 단순히 돈만 치르면 그만이지만 대출 정지는 실질적인 불편이 따르기 때문에 연체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고 주장했다.30) 요컨대 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할 경우 불편을 느끼는 이용자들에게는 대출 정지가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도서관을 이용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여기는 이용자들에게 대출 정지의 제재 수단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며, 이는 연체료 제도의 시행을 원하는 이용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반증한다.31)

  대출 도서의 미반납에 따른 폐해는 자못 심각하다. 상당수 공공도서관에서는 관리 규정에 미반납 도서를 자연 손실분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상조회에서 사비로 미반납 도서를 구입하는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가령 부산지역 공공도서관에서는 1관 당 연평균 300~400만원의 직원 사비가 손실 도서 구입에 쓰이고 있을 지경이다.32) 도서관도 도서관이지만 연체에 따른 더 큰 피해는 다른 이용자들에게 돌아간다.33) 대출 예약을 하고 반납일에 맞춰 도서관을 찾았다가 연체되어 그냥 돌아가는 이용자들도 적지 않으며,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로 지정된 책은 아예 빌리기를 단념해야 할 정도라 한다.

  그렇다면 외국의 사례처럼 강경한 방법을 쓰는 건 가능할까? 이와 관련하여 유사한 사건을 되돌아보는 게 도움이 될 듯하다. 2년 전, 한국대여업중앙회는 책 대여점과 비디오 대여점에서 물품을 빌린 후 이사를 갔거나, 불어난 연체료를 떼먹기 위해, 분실ㆍ훼손해 반납하지 않는 사람 등 100여 명을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이 중 30여 건을 배당 받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불법영득(領得) 의사가 있어야 하는데 단순히 빌린 후 반납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불법영득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무혐의로 처분했다. “대여 기일을 지키지 않으면 연체료를 부담한다”는 약정을 하고 빌렸다가 반납하지 않은 것을 횡령죄로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다.34) 다만 이러한 경우 형사 처벌은 어렵더라도 민사상 책임은 피할 수 없다는 여지를 남겼다.

 

연체와 거짓말

  미국의 인기 시트콤 ‘사인펠드(Seinfeld)’ 시즌 3의 한 에피소드는 도서관 경찰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적절하게 그리고 있다.35) 주인공 제리가 20년 전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대출한 ‘북회귀선’을 돌려받기 위해 북맨(Bookman)이라는 별명의 도서관장이 직접 제리의 집을 찾아오는 장면이 그것이다. 실제로 도서관 경찰이란 직책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미국인들은 도서관 사서들의 집요한 반납 독촉을 마치 경찰의 수사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심리학자인 볼프강 립카인드(Wolfgang Lipkind) 박사에 따르면, 사서들이 도서 반납을 게을리 하는 대출자들에게 집착하는 까닭은 사서 집단이 매우 정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사서들은 수녀 다음으로 정직한 직업군이라는데, 그래서 특히 이용자들의 거짓말에 관용을 보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윌마 W. 윌슨(Wilma W. Wilson)은 반납데스크에서 연체자들로부터 직접 들은 기막힌 변명들을 기록하여 <표 2>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36) 그들의 변명은 과연 참말일까, 거짓말일까?
 

<표 2> 윌마 W. 윌슨의 ‘황당무계 연체 변명’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오는 길에 외계인들에게 납치되었어요. 그들은 3개월 동안 이 책을 돌려주지 않았다니까요!”

“두 달 전 휴가를 떠났습니다. 불행하게도 항공사에서 이 책이 든 가방을 분실했지요.   어제서야 수화물이 집에 도착했습니다.”

“대통령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우편으로 백악관에 부쳤어요. 늦게 돌려  보냈다고 그가 사과했지만, 이 책을 통해 경제 정책 수립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전해  왔어요.”

“귀신이 들린 우리 집에서 오직 이 책만이 사악한 유령을 방어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책을 빌려 나오는데 총을 겨누며 다가온 제정신 아닌 대학생에게 빼앗겼어요. 수업에  절박하게 필요한 책이라며 학기가 끝나면 돌려주겠다지 뭐예요. 그런데 여섯 달이 지나도록 돌려받지 못했어요.”

“말기암 환자인 룸메이트를 위해 이 책을 빌렸어요. 그는 이 책을 너무 좋아했기에 차마 돌려달라고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지난주에 그가 하늘나라로 떠났고, 그의 동생으로부터 책을 돌려받았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이유는 우리 지역에서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저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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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성진. 1988. 『도서관학통론』. 서울 : 아세아문화사. pp.149~150
2 “What A Slow Reader! Book Is Returned To Camborne Library 53 Years Late”,    <http://www.cornwall.gov.uk/index.cfm?articleid=8321>
3 “Longest Overdue Book From Brown Library Found”, <http://www.jvbrown.edu/longestbook.html>
4 “Halifax university finds book overdue for 74 years at U.S. library”,    <http://www.canada.com/news/story.asp?id={1F70F335-AA11-4AC1-ADE0-03328657E60}>
5 “Almost 60 years later”, <http://www.findarticles.com/p/articles/mi_qn4196/is_20020130/ai_n10763550>
6 “Library book returned 78 years late”, The Mercury News 2005/01/11,    <http://www.mercurynews.com/mld/mercurynews/news/weird_news/10617993.htm>
7 “Overdue Book Nets New York Library $2,190”, American Libraries 2005/05/06,    <http://www.ala.org/ala/alonline/currentnews/newsarchive/2005abc/may2005ab/orchard.cfm>
8 “$9000 waived after 1945 library book found”, The Daily Post 2006/02/07,    <http://www.dailypost.co.nz/localnews/storydisplay.cfm?storyid=3671639>
9 “Man pays fine for book overdue 60 years”, The Boston Globe 2006/09/06,    <http://www.boston.com/news/local/maine/articles/2006/09/09/man_pays_fine_for_book_overdue_60_years/>
10 “A resolution kept, a book returned 68 years later”,     <http://www.goodnewsblog.com/2006/01/02/a-resolution-kept-a-book-returned-68-years-later>
11 “Man returns library book 47 years later”, MSNBC 2007/01/07, <http://www.msnbc.msn.com/id/12784366/>
12 “30년전의 책값”, 전라일보 2005/05/30,      <http://www.jeollailbo.com/news/region_view.php?code4=SO0100002&An=142860>
13 “한양대 졸업생 20년 전 미납도서 대신 책값 보내와”, 한겨레 2006/02/02,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9486.html>
14 “前장관출신 교수, 희귀본 30년만에 뒤늦게 반환 물의”, 노컷뉴스 2004/06/10,      <http://cbs.co.kr/nocut/show.asp?idx=19155>
15 “Previous Reference Questions”, <http://www.wwlibrary.org/MAIN/Reference/refpre03.html>
16 “Pregnant Florida Library Patron Jailed for Overdues”, American Libraries 2000/01/24,      <http://www.ala.org/ala/alonline/currentnews/newsarchive/2000/january2000/pregnantflorida.cfm>
17 “Woman Jailed for Overdue Library Books”,      <http://www.managinginformation.com/news/content_show_full.php?id=472>
18 “Overdue books could bring jail time”, ABC Chicago 2004/11/19,      <http://abclocal.go.com/wls/story?section=News&id=2408150>
19 “Nolan County Library presses criminal theft charges for overdue library books”,      <http://media.www.thebatt.com/media/storage/paper657/news/2001/09/27/Opinion/
       Nolan.County.Library.Presses.Criminal.Theft.Charges.For.Overdue.Library.Books-515862.shtml
>
20 “Nolan County Library presses criminal theft charges for overdue library books”, KOMO TV 2005/03/02,      <http://www.komotv.com/news/archive/4145856.html>
21 “Baytown woman arrested for overdue library book”, KTRK-TV 2006/06/29,      <http://abclocal.go.com/ktrk/story?section=local&id=4317071>
22 “Patron Receives Jail Sentence for Overdue Books”, Library Journal 2006/04/07,      <http://www.libraryjournal.com/article/CA6322520.html>
23 “Materials Recovery Program”, <http://www.library.phila.gov/registration/material.htm>
24 “Book 'em: Libraries turn to collection agencies”, Milwaukee Journal Sentinel 2005/01/14,      <http://www.jsonline.com/story/index.aspx?id=292917>
25 “Debt collectors go after overdue books”, USA TODAY 2004/06/27,      <http://www.usatoday.com/news/nation/2004-06-27-libraries-usat_x.htm>
26 “도서반납 지연 과태료 징수에 해결사까지”, 호주온라인뉴스 2005/11/29,      <http://www.hojuonline.net/detail.php?seq=2615>
27 “Libraries get tough about overdue books”, MSNBC 2006/04/13, <http://www.msnbc.msn.com/id/12149632/>
28 “공공도서관 "책 반납 연체족 미워"”, 세계일보 2005/04/17,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510&PCode=0007&DataID=200504171529000200>
29 “서울대 도서연체자 ‘골머리’”, 문화일보 2004/09/17,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4091701030727302002>
30 “대학도서관 "책 좀 돌려 주세요"”, 연합뉴스 2005.04.06
31 “공공도서관 연체료제 시행을”, 세계일보 2003/10/15,     <http://www.sgt.co.kr/Service1/ShellView.asp?SiteID=&OrgTreeID=98&TreeID=17&Pcode=0000&DataID
     =200310151421000042
>32 “"빌려만 가고 반납은 몰라" 공공도서관 '미반납' 몸살”, 부산일보 2007/01/29,     <http://www.busanilbo.com/news2000/html/2007/0129/030020070129.1006112750.html>
33 “미반납 도서 골치”, KBS대구 뉴스광장 2007/02/16,     <http://daegu.kbskorea.net/news/view_news.php?p_date=20070216&p_pkey=2400121>
34 “비디오테이프 몇달째 반납 안 하는데…檢 "불법영득 의사 없다" 형사처벌 불가”, 한국일보 2005/09/02,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509/h2005090206082122000.htm>
35 "The Library", Seinfeld Season 3,     <http://www.sonypictures.com/tv/shows/seinfeld/site/player/player.html?path=../video/promos/0304>
36 Manley, Will. 1993. The Manley art of librarianship. Jefferson, N.C.: McFarand. 130-131.

     글 ㅣ 전창호ㆍ부산여대 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