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인물탐구  

 

  사서들과 문헌정보학도 중에서 랑가나단의 ‘도서관학 5법칙(The Five Laws of Library Science)’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도서관학 5법칙(Five New Laws of Library Science)’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번 호에서는 새로운 도서관학 5법칙을 정립한 우리 시대의 도서관 인물, 마이클 고먼(Michael Gorman)에 대해 알아본다.    


  마이클 고먼은 도서관의 토대를 다지고 도서관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사서직의 영원한 가치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도서관계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특히 ‘기술맹신주의자들(technojunkies)’이 사방에서 발호할 때 정곡을 찌르는 논리의 칼로 일거에 그 기세를 격파하고 도서관과 사서직을 수호하는 전사(戰士)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전후에 정보기술이 모든 것이며 도서관을 대체할 것이라고 믿는 ‘기술맹신주의(technolust)’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정보화시대를 넘어 ‘지식기반시대’라고 하는 21세기에서도 이러한 기술맹신주의는 여전히 잠재하며 언제든지 창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마이클 고먼은 이러한 기술맹신주의의 광기(madness)를 자신의 오랜 동안의 도서관 실무 경험과 문헌정보학적 배경을 가지고 예리하게 분석하여 그 허점을 지적하고, 기술맹신주의자들을 ‘도서관의 적(enemies of the library)’이라고 부르며 공격하여 자숙하게 만들었다. 이제 도서관계의 베테랑 사서이자 문헌정보학의 대표적 논객인 마이클 고먼의 인생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베테랑 사서

  마이클 고먼은 1941년 영국 옥스포드셔(Oxfordshire)의 위트니(Witney)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964년부터 1966년까지 영국의 일링 기술대학의 도서관학교(School of Librarianship, Ealing Technical College, 현재의 Thames Valley University)에서 도서관학을 공부하였으며, 1966년부터 1977년까지는 영국의 도서관계에서 근무하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영국국가서지위원회(Council of British National Bibliography)의 편목책임자로, 영국도서관계획 사무국(British Library Planning Secretariat)의 직원으로, 영국국가도서관의 서지표준국(the Office of Bibliographic Standards in the British Library)의 책임자로서 일하였다. 그 후 그는 미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다. 1977년부터 1988년까지 어바나-샴페인의 일리노이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도서관에서 기술봉사부장과 일반봉사부장을 역임하였다.  그 이후 현재까지는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프레스노 캠퍼스(California State University, Fresno)의 헨리매든 도서관(Henry Madden Library)의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작은도서관 - 공공도서관 협력시스템 구축 방안 국제세미나”에서
연설하는 마이클 고먼 (’06. 8. 25,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 

  이처럼 그는 도서관 현장에서 실무 경험을 쌓는 한편 도서관협회 차원의 각종 위원회와 사무국에서 주요 현안과 기술적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여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을 하며 살아왔다. 그러므로 그의 글을 읽어 보면, 현실적 토대에 근거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하는 논리가 배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는 현장의 베테랑 사서이면서 또한 미국과 영국의 여러 도서관학교(문헌정보대학원)에서 강의를 하였다. 그는 특히 목록 분야의 대가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그는 1978년의 『영미편목규칙』 제2판(Anglo-American Cataloging Rules, 2nd edition, 약칭 AACR2)과 1988년의 『영미편목규칙』 제2판 개정판(Anglo-American Cataloging Rules, 2nd edition, 1988 revision, 약칭 AACR2R)의 책임 편집자(first editor)이다. 또한 그는 1999년의 『영미편목규칙』 제2판 간략판 제3판과 이후 2005년 제4판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는 편집자(editor)로서 많은 활약을 하였다. 그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미국도서관협회의 잡지《American Libraries》의 객원 편집자로서 활동하였으며, 문헌정보학 분야의 저명한 학술지인 《Library Trends》의 1999년 봄호 편집을 담당하여 “도서관 기술에 대한 인간의 대응(Human Response to Library Technology)”이라는 주제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은 논문들을 엮어 내었다. 그는 이러한 열정어린 경력으로 여러 상을 수상하였다. 대표적으로 1979년 마거릿 맨 표창장(Margaret Mann Citation)을, 1992년에는 멜빌 듀이 메달(Mevil Dewey Medal)을 받았다.      

 

도서관과 사서직의 토대와 가치 수호

  마이클 고먼이 생산한 수많은 논문과 책에는 도서관 현장에 근거하고 미래를 뚫어보는 튼실한 논리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으로 『미래도서관: 꿈, 광기, 현실(Future Libraries: Dreams, Madness, & Reality)』(1995)을 들 수 있다. 그는 이 책으로 블랙웰 학술상(Blackwell's Scholarship Award)을 수상하였다. 월트 크로포드(Walt Crawford)와 함께 쓴 이 책을 통하여, 마이클 고먼은 기술맹신주의자들의 광기를 건실한 논리의 칼로 무찌르고 도서관과 사서직의 토대와 가치를 수호하고 미래 도서관을 위한 전망을 제시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기술맹신주의자들은 “새로운 기술은 항상 이전 것보다 좋으며, 기술은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되며, 정보기술로 인하여 책과 도서관은 이제 무용지물이 되고, 모든 아날로그 매체는 거대한 디지털 고속도로의 일부분으로 수렴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고먼은 ‘데이터(data) - 정보(information) - 지식(knowledge) - 이해(understanding) - 지혜(wisdom)’라는 배움의 사다리를 이야기하면서, 전자 기술은 그 중 가장 낮은 단계인 데이터와 정보를 처리하는 데 적합하고 배움의 단계가 올라갈수록 인간 정신이 중요함을 지적하였다. 기술맹신주의자들에게 대항하고자 하는 사서들에게 고먼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 사서들은 도서관이 정보만을 전적으로 다루지 않으며 심지어 우선적으로 다루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자. 도서관은 인류가 더욱 넓고 깊은 식견을 가질 수 있도록 어떤 형태로든 기록된 지식을 보존하고 배포하며 이를 활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식을 통하여 이해에 도달하며, 궁극적으로 지혜를 얻는다. 데이터(파편의 사실들, 숫자 등)와 정보(조직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흡수하는 것은 종종 두서가 없고 산발적이다. 그것은 실용적인 용도로, 그것도 대개 짧은 순간에 사용될 수 있지만, 그렇게 획득된 정보가 (인간이) 알기 쉬운 지식 구조로 맞추어지지 않는 한 결코 지속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고먼의 ‘신도서관학 5법칙’

  여기서 고먼의 ‘신도서관학 5법칙’을 음미하도록 하자. 그는 문헌정보학의 석학이자 도서관 운동의 영웅인 랑가나단의 ‘도서관학 5법칙’ 속에 담긴 진실을 도서관과 사서직의 현대적 의미와 미래의 비전을 담아 아래와 같이 다시 구성하였다.     

• 제 1법칙 - 도서관은 인류를 위해 봉사한다.
  (Libraries serve humanity)
• 제 2법칙 - 지식을 전달하는 모든 형태를 도서관 자료로 고려하라.
  (Respect all forms by which knowledge is communicated)
• 제 3법칙 - 도서관 서비스를 향상시키기 위해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라.
  (Use technology intelligently to enhance service)
• 제 4법칙 - 지식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수호하라.
  (Protect free access to knowledge)
• 제 5법칙 - 과거를 명예롭게 여기고 미래를 창조하라.
  (Honor the past and create the future)

마이클 고먼처럼 도서관과 사서직의 기본을 지키고 그 토대를 강화하는 작업을 한 대표적인 우리나라 학자로는 김정근을 들 수 있다. 독자들이 마이클 고먼의 사상을 좀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정근의 『디지털도서관: 꿈인가, 광기인가, 현실인가』를 읽어 보시길 권한다. 고먼의 최근 저서로는 하이스미스 상(Highsmith Award)을 받은 『우리들의 영속적인 가치(Our Enduring Values)』(2000), 『영속적인 도서관(The Enduring Library)』(2003), 『우리들 자신의 본질(Our Own Selves)』(2005) 등이 있다.  

고먼은 도서관계의 여러 요직을 거쳐 미국도서관협회 회장(2005년~2006년)으로 재직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도 1996년에 동아대학교 도서관과 한국도서관ㆍ정보학회의 초청으로 방문하여 “꿈, 광기, 그리고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으며, 또한 지난 해 8월에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작은도서관-공공도서관 협력시스템 구축방안 국제세미나」에 참석하여 “미국의 공공도서관”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하였다.

 이상에서 보듯, 마이클 고먼은 사서들이 디지털이라는 신기루에 홀리지 말고, 정보기술을 지혜롭게 활용하고 철저한 현실 분석을 통하여 인류와 지역 사회에 대한 인간적 봉사를 실현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마이클 고먼의 통찰과 메시지는 앞서 소개된 여러 도서관 사상가들의 어깨 위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과정을 통하여 생산된 것이다. 우리는 현대적 감각을 가진 그의 논리와 사상을 통하여 과거와 소통하고 미래의 도서관을 풍요롭게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글 |이용재ㆍ부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