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우리 도서관이 변모하고 있다. 도서관 수와 장서 수가 늘어나고, 시설 면에서 편리함을 갖추고 도서관 건물은 예술적인 아름다움까지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도서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도서관 발전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도서관 현장에서 근무하는 분들에게 요즘 도서관 이용객 수가 많아서 바쁘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특히 주말이면 가족을 동반한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찾는다고 한다. 도서관이 휴식과 지적 활동의 장소로서 환영받는 곳이 되고 있다는 증거다. 한편으로는 도서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도서관이 변화하는 이 시점에서 나는 도서관학을 업으로 삼는 학자들과 현장에서 일하는 사서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고자 한다. 우리가 얘기하는 도서관의 변모와 이용객 수의 증가로 도서관이 발전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지 하는 점이다. 혹자는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아직 부족하다거나 아니라고 답변할 것이다. 두 가지 답변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점이 있다.

전자는 도서관이 변모하고 이용자들이 누리는 혜택이 많아졌다는 관점에서 하는 말일 것이고, 후자는 아직 발전이라고 하기에는 이르고 앞으로 더 지속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변화가 도서관 발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까? 있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이 글에서 현재 도서관의 변모가 도서관 발전은 아니라는 견해에 대해 그 이유를 풀어나가려 한다. 도서관 발전에는 수적인 증가나 시설 확충이 분명 중요하다. 현재까지 도서관 이용객 수의 증가는 이러한 기본 조건의 향상에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이용자는 도서관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편의에 목말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도서관의 변화를 살펴봤을 때, 이용객이라는 표현보다는 엄밀하게 ‘방문객’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도서관 이용자, 이용객의 의미와 방문객의 의미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영어에서도 visitors와 users라는 별개의 단어를 사용하듯, 우리도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방문객인지 이용자인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도서관 발전을 생각할 때 방문객과 이용자 가운데 어떤 사람들에게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도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는 도서관에 관한 학문을 하는 사람이지만, 이 글에서는 도서관 ‘이용자’로서 도서관 발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많은 학술논문, 연구계획서와 보고서, 책을 읽다 보면 ‘이용자 중심(user-centered)’이라든지 ‘이용자 편의적(user-friendly)’이라는 표현을 접한다.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이용자로서(그리고 정보이용자 연구가 주된 연구 분야인 연구자로서) 아주 의미심장한 표현일 뿐만 아니라 부담스럽기까지 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용자 중심의 시스템은 어떤 것이고, 이용자 편의적인 서비스는 어떤 것인지 참으로 정의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진정으로 그 의미를 알고 사용하는지 의심할 때가 종종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자 중심이나 이용자 편의라는 표현을 그냥 상식적 어구나 수사적(修辭的)인 표현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동반하면서 말이다.

정보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조차 ‘이용자 중심,’ ‘이용자 편의’라는 표현은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시스템 지향’에서 ‘이용자 지향’이라는 이용자 연구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야기하면서 ‘이용자 지향(user-oriented)’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우리 도서관은 이용자에 대해, 그리고 이용자 연구에 대해 너무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도서관에 대한 많은 연구논문과 보고서에는 최첨단 기술의 시스템, 도서관 자동화, 디지털 도서관의 발전을 설명하면서 이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어떤 부분이 이용자 지향적인 관점에서 시스템을 설계하고, 도서관 자동화를 기획하고, 디지털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인지 찾기 힘들 때가 많다.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도서관 자동화를 하고 나서, 그리고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하고 난 후에 이용자가 생각나서 이렇게 표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든다.

‘이용자 지향적’인 시스템이나 도서관 서비스는 ‘이용자를 위한(for users)’ 것이 아니라 ‘이용자와 더불어(with users)’ 기획, 설계, 구축, 평가한 결과물이다. 도서관 담당자나 시스템 설계자들이 만들고 나서 이용자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수준의 평가가 ‘이용자 지향’은 아닌 것이다.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도서관 발전을 이야기할 때는 외형적인 변모뿐만 아니라 이용자 지향적인 내용(contents)을 담고 있어야 한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관심 대상이 되는 ‘내용’이 도서관 발전에도 적용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용자 지향적인 내용을 담은 도서관은 어떤 도서관일까? 이용자로서 답을 하자면, 남는 시간이나 휴식을 위해 찾아갈 수도 있고, 동시에 전문적인 정보가 필요할 때 길잡이 역할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남는 시간을 떼우거나 쉬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다면 굳이 최신식 건물이나 첨단 시스템을 갖출 필요는 없다. 가까이에 있고 (때로는 동행인과 함께) 기본적인 지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책이나 디지털 정보자원이 있으면 충분하다. 다시 말해 물리적으로 많은 요구사항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연구나 강의 준비를 하기 위해 또는 학술적인 교류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가려고 한다면 요구사항은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도서관 건물의 위치나 시설보다는 데이터베이스의 종류나 디지털 정보자원의 수준에 더 관심이 있고, 이러한 정보자원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처럼 이용자가 그리는 도서관의 얼굴은 한 가지가 아니고,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용자가 그리는 도서관의 얼굴은 이용자와 함께 체계를 갖추기 때문에 이용자의 얼굴이 들어 있다. 따라서 이용자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도서관, 다시 말해 이용자의 얼굴이 나타나는 도서관이 진정 발전한 도서관의 얼굴일 것이다.

요즘 도서관을 찾거나 도서관 사이트에 접속하는 이용객들은 도서관의 어떤 얼굴을 보고 있을까? 새로 짓거나 새롭게 단장한 건물, 그 안에 깨끗하게 정돈된 자료와 공간, 예쁘게 설계된 도서관 사이트……. 혹시 이런 얼굴이 전부는 아닐까?

위의 비판적 질문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는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는 우리 도서관의 얼굴에 대한 경고라고 여기면 좋겠다.

우리는 우리 도서관의 얼굴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우리 도서관의 얼굴을 참다운 모습으로 만들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점이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도서관 수의 증가나 시설 확충은 너무나 부족한 시설과 여건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수적인 증가나 시설 확충보다, 혹은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도서관 내용의 향상이다. 정보자원의 질적ㆍ양적 증가, 정보자원 접근방식의 개선(quality control),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서의 전문성과 직업의식이 모두 필요하다.

이러한 내용을 제공하는 도서관의 얼굴에는 이용자의 얼굴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도서관을 인터넷 검색엔진이나 학술 포털 사이트와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