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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도서관계의 선구자 이범승(李範昇)선생

조 재 순 l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1964년 4월, 한국도서관협회에서는 제1회 도서관주간을 맞이하여 이범승 선생의 도서관 업적을 기리는 표창식을 거행하였다. 지우(至愚) 이범승 선생은 1919년 9월부터 1926년 3월까지 현 서울시립종로도서관의 전신인 경성도서관을 설립?경영하였으며, 근대 한국도서관계의 선구자로서 그 공적을 높이 평가받은 것이다. 견해의 차이는 있으나 그는 일반적으로 경성도서관의 설립자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어린이를 위한 아동열람실을 설치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이범승 선생은 1887년 8월 충청남도의 대부호 가문에서 태어나 일본의 제8고등학교를 거쳐, 1917년에 교토(京都)제국대학 독법과(獨法科)를 졸업하였다. 그가 우리나라에 도서관 설립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도서관연구에 착수한 것은 바로 그 무렵부터였다. 학업을 마친 뒤 한때 만주국 철도국에 종사한 일도 있으나 얼마 후에 귀향, 1921년 9월 사재를 털어 경성도서관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보성전문학교 강사를 지내기도 한 그는 1926년 조선총독부 식산국 농무과에서 근무하기 시작하여 1940년 관계에서 물러나기까지 황해도 산업국장, 경상북도 이사관 등을 지냈다. 광복 직후에는 거주지인 의정부에서 자치위원장에 추대되었다가 미군정청에 의해 양주서장에 피임되었으며 이어 초대 서울특별시장(당시엔 경성부윤)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이후 국회의원을 역임하는 등 정치활동에 참가하다가 1976년 3월에 서거하였다.

그가 설립했다고 알려져 있는 경성도서관의 역사는 1909년 경성일본인 상업회의소 서기장 山口精가 설립한 경성문고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11년 경성도서관이라 개칭된 경성문고는 상업적인 목적을 지닌 유료도서관이었다. 그 후 1920년에 윤익선(尹益善)등이 그 장서를 매입?인수하여 종로구 가회동 소재 취운정(翠雲亭)에 같은 경성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재정난으로 운영이 곤란해지면서 이범승이 운영하는 도서관의 분관으로 인수되었던 것이다. 이범승은 1921년 9월에 파고다공원 서쪽에 있는 구 이왕직양악대(舊李王職洋樂隊) 건물을 무상대여하여 본관으로 사용하고, 취운정 경성도서관을 분관으로 운영하였다. 분관은 무료로 개방하였으나 본관은 독서상 혼잡을 피하기 위하여 1일 1회 열람요금 2전, 1개월 요금 40전을 받았다. 신관이 개관된 1923년에는 장서수 약 1만5천책, 연간 열람자수는 7만명을 넘어 서울 최대의 공공도서관이 되었다.

이범승의 도서관활동은 도서관의 사회교육사업을 중시한 데에 특징이 있다. 그는 도서관과 지역사회의 긴밀한 유대관계가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기본적인 열람업무 외에 각종 문화활동, 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어린이와 부녀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사업이었다. 그는 1923년 9월 경성도서관내에 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동열람실을 별도로 마련하였는데, 당시 1일 평균 54명의 어린이가 이 열람실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홍구(李鴻球)의『경성도서관약사』에 의하면, 아동열람실에는 도서 이외에도 표본, 괘도 및 이화학 기구를 비치하였고 초등학교의 수업시간을 참작하여 오후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오전에는 비는 시간을 이용하여 빈민아동 30여명을 모아 2개년 졸업예정으로 일어, 국어, 산술 등을 가르쳤다. 일요일 밤마다 동화회를 개최하였으며, 야간에는 조선여자청년회에 아동실을 무료로 대여하여 학교를 다니지 못한 구가정의 부인들에게 신교육을 실시하였다. 또 토요일 밤에는 부인강좌를 개설하여 부인들에게 적합한 학술, 위생, 가사 등 강좌를 실시하면서 자료를 만들어 무료로 배부하였다. 어린이와 부녀자를 위하여 월 1회 이상 환등, 활동사진회 및 레코드 콘서트회를 개최하는 등 그가 전개한 도서관활동은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다채로운 사회교육사업은 당시 사회의 저변에서 가장 냉대받고 있는 소외계층이라 할 수 있는 어린이와 부녀자의 해방을 희구한 이범승 사상의 실천이었다. 그가 전개한 활동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스토리텔링의 실천이요, 적극적인 자원봉사자의 활용이며 시청각매체를 통한 도서관문화활동이었다. 이러한 그의 활약은 당시 다른 도서관에는 커다란 자극을, 조선총독부에는 관립도서관의 설립을 서두르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온 정열과 사재를 바쳐 운영하던 경성도서관은 결국 재정난을 타개하지 못하여 문을 닫게 되고 말았다. 경성도서관은 1926년 4월 「경성부립도서관 종로분관」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부영(府營)으로 개관하게 되었다. 이범승이 경영한 경성도서관은 비록 활동기간이 5년에 불과하기는 했지만, 초기 우리나라 근대공공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특히 아동과 부녀자에 대한 사회교육사업을 활발히 전개한 그의 업적은 오늘날 우리 공공도서관계에 좋은 교훈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현재 종로도서관 앞뜰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어 1971년에 건립된 이범승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1964년 도서관협회의 표창장 수여와 더불어 응한 인터뷰에서 그는 도서관시설에 돈을 아끼는 정치풍토에서는 나라가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4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들어맞는 말이다. 지난 한 해동안, 정부가 하지 않는 일을 시민단체와 민간방송국이 주도가 되어 도서관건립운동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얼마전 그 방송국의 프로그램이 막을 내리면서, 그동안 민간차원에서 전개되던「기적의 도서관」프로젝트에 대한 일반사람들의 관심 또한 차츰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동안의 성과로 12개 지역이 기적의 도서관 건립지로 선정되었고, 이미 도서관이 건립된 순천, 제천, 진해 이외의 나머지 지역에도 올해 안으로 어린이전용도서관이 세워질 예정이라는 것이다. 방송측에서는 이미 이벤트성 사업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과 사서들의 인력구성, 도서관 운영프로그램 등 건립된 어린이도서관의 향후 운용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하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우리 도서관인들의 몫이라고 하겠다. 이는 아동열람실을 최초로 설치한 이범승 선생의 유지를 받드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Newsletter of Libraries 20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