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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南 事件의 起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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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저자사항
安南 事件의 起源
발행사항
서울 : 博文局, 1883
형태사항
전자자료(image)JPEG第一號 : 이미지파일 20개 (3M)
주기사항
순간
연호 : 朝鮮開國四百九十二年
발행일 : 西歷 一千八百八十三年 十月 三十一日
창간일 : 18831031, 陰曆 一千八百八十三年十月初一日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원문 파일을 기증받아 이미지 파일로 변환하였음
원소장처 : 관훈클럽
수록자료: 漢城旬報 5면 1단
분류기호
한국십진분류표-박봉석편-> 084
자료이용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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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내용/해제내용

[초록]

上海新報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咸豐8년(1858년)에 法國(프랑스) 사람들이 兵船을 거느리고 越南 南圻[수도의 남쪽 교외]에 이르러 프랑스의 敎師를 학살했다고 문책하는가 하면, 嘉定·邊和·安江·河仙·永隆·定祥 여섯 省을 先後로 침략하였으나, 마침 중국에서 다른 일이 있어서 이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이어 同治 1년(1862년)에 프랑스가 私的으로 월남과 和議條約을 체결하였고, 同治 5년에 프랑스사람 樂克里(라크루 Lacrouts)가 印度에서 南藏에에 들렀다가 滇池를 거쳐 월남에 이르러 瀾滄江 상류를 답사하여 滇·越의 通商要路를 개척하려다가 滇池의 길이 막혔으므로 길을 洱江으로 바꿔 東行하여 越南 北圻에 도착하였다. 同治 9년(1870년)에 프랑스 商人 涂普義(드베일 De Bayle)가 漢口에서 곁길로 雲南 提督을 찾아가서, 紅江(송코이강)에서 軍器를 수송하여 滇池로 들여가기를 청하여 提督이 이를 승낙하므로 드베일이 프랑스로 돌아와서 새 路線 개척 공사를 완료하였고, 이해 가을에 다시 東京(통킹)에 이르러 송코이강 상류를 거쳐 滇池에 들어와서 軍器를 交付함으로써, 송코이강이 滇省의 通商要路가 되었다. 이에 嘉定·西貢(사이공)에 駐在한 프랑스 官員이 사람을 보내 송코이강 상황을 정탐해 보니, 드베일의 말과 서로 부합되므로 이후부터 일부의 군사를 여러차례 보내어 越南 北圻를 쳐서 점령하기로 하고, 혹 거짓 화의조약을 내세워 송코이강의 通商을 협박하기도 하였다. 프랑스의 外部 德克斯(델카세 Delcassé)가 議院에서 『越南의 北圻는 越南에서 가장 풍요한 省인데, 이전에 중국 土匪들의 침략과 유린을 받아 왔고, 또 해안에 도둑이 많아 通商에 많은 장애가 되어 本國에서 여러 차례 軍糧을 소모하여 海賊들을 섬멸하였으니, 속히 전략을 세워서 그곳을 개척해야 한다』 하므로, 議院에서 그대로 가결되었다. 이리하여 프랑스는 월남과 同治 13년(1874년)에 추후 조약을 체결하여 모두 22조의 규약으로 되었는데, 그중 제 2조에 『越南國王에게 自主權을 행사, 다른 나라의 統屬을 일절 받지 않을 것을 인정한다』 운운하였으니, 이는 월남이 수십세 동안 중국의 藩邦[諸侯의 나라]으로 지금까지 깍듯이 지켜오던 명분을 무시하자는 것이요, 同條에 또 『越南에 무슨 일이 있을 적에는 프랑스에서 적극 도와 주기를 원한다』 하였으니, 이는 중국에서 역대 이래 군사를 보내어 越南의 난국을 수습하여 阮氏의 宗祀가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보존되었으므로 월남을 끝까지 보호해야 할 중국의 권리도 무시하자는 것이다. 또 제 12조에 『海口에서 통킹을 거쳐 雲南까지의 行船貿易에 대해서는 조약에 따라 稅를 약정한다』 하였으니, 이는 중국의 雲南을 자기네의 통상구역으로 정해 놓고도 중국과는 숫제 협상을 거치지 않은 것이다. 드디어 이 조약을 내세워 월남을 협박, 억지로 도장을 받아 상호 교환한 뒤에야 그 駐京大臣 羅淑亞(루시안 Lusian)를 시켜 公文을 갖춰 照會하므로 總署에서, 월남은 우리 중국의 속국이라는 내용으로 回報하였으니, 이는 이 조약의 定款을 공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에 프랑스 公使署의 번역관이 우리 회보 가운데 「접수했다」 「회보한다」는 등의 귀절만을 번역, 월남은 우리 중국의 속국이라는 귀절은 번역하지 않고 일부러 우물쭈물하므로 프랑스의 駐京公使나 그 外部와 다른 나라의 駐京大臣들이 모두 중국이 프랑스와 월남의 조약 문제에 대해서는 한번도 따진 적이 없는 것은 이미 프랑스·월남의 새 조약을 인정한 증거이다 하였다. 하지만 사실 이번의 回報에, 이미 월남은 중국의 속국이라는 것을 宣言하여 그들의 조약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중국에서 公使를 프랑스에 파견하여 이를 따지지 않았을 뿐이다. 光緖 7년(1881년)에는 프랑스가 군사를 보내 송코이강에 주둔시키고 그 상류를 出沒하게 하므로 우리 駐프랑스 公使가 프랑스 外部에 질문하자, 그들은 오히려 월남의 南圻를 점령하려는 뜻이 없다고 대답하였고, 군사를 송코이강에 주둔시킨 까닭을 질문하자, 그들은 월남은 어디까지나 중국의 속국이라고 대답하였으며, 프랑스의 역대 外部大臣인 桑迪佛米希尼(Saint-Thibout Mitchell)·朴格來(드베이 Develle) 등은 모두 프랑스는 월남과의 조약이 있으므로 의당 조약에 의해 시행되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이 일은 중국과 아무런 간섭도 없고, 또 중국의 권리를 침해하려는 뜻도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럼 그들은 혹, 월남은 본시 우리의 속국이므로 자기네들이 아무리 새 조약을 지켜야 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의당 冊封權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몰라서인지, 아니면 월남은 본시 우리 滇·粤 등 세 省과 가까운 接境이 되므로 그 存亡도 우리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몰라서인지, 설사 프랑스가 두 나라의 교섭 조약을 굳이 주장하여 새로 체결하였다는 조약으로 우리 중국의 수천백년 동안의 옛 법을 폐지시키려 한다면, 우리인들 어찌 上國의 권리로 새 법을 따로 만들어, 월남이 私的으로 다른 나라와 체결한 조약을 인정하지 않고 그 체결된 조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릴 수 없겠는가. 이 다음 프랑스에서 이를 질문할 때 우리도 새로 정한 규칙을 의당 지켜야겠다고 한다면, 프랑스에서 무슨 답변할 말이 있겠는가. 또 이와는 반대로, 중국에서도 프랑스 사람들의 수법을 본받아 장수와 군사를 파견하여 월남을 보호한 뒤에 프랑스에서 이를 질문할 때, 우리도 우리의 군사가 프랑스 국경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프랑스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한다면, 프랑스에서 무슨 답변할 말이 있겠는가. 다만 중국에서는, 프랑스와 우호조약을 체결해 온지 오래이므로 이같은 사소한 감정으로 爭端을 일으켜 30여년 간의 우호를 손상시키고 싶지 않아서일 뿐이다. 지난 해에 프랑스 사람들이 安南의 海口를 점령하여 통킹이 크게 어지러워지므로 우리의 駐法大臣을 프랑스 外部에 파견하여 그 이유를 따졌는데, 外部에서는 상호 왕래한 공문 가운데 잘못된 번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핑계하고 1년이 다 가도록 이를 회보하지 않았으며, 우리가 滇·粤 각 省에 기후가 흐리다 하여 군사를 보내 巡訪하게 하였을 적에는 프랑스 사람들이 이를 疑慮, 그 駐京大使 寶海(부링 J.Bowring)에게 비밀히 지시하여 우리의 總署와 대책을 타협하게 하므로, 지난해 겨울에 부링公使가 天津에 들러서 다시 北洋大臣 李中堂(李鴻章)과 대책을 상의하였다. 이에 부링公使는, 중국과 프랑스 군사가 함께 월남의 북쪽 교외에 주둔하고 있다가는 쉽게 틈이 생길까 매우 염려하여 스스로 세 가지 방안을 제의하였는데, 제1조에서는 중국 군사가 境外로 물러나 주둔하면 부링公使가 즉시 프랑스의 명의로 공문을 갖춰서 프랑스에서는 절대 월남의 北圻를 침략할 뜻이 없음을 밝힐 것과 아울러 越南國民의 權謀를 억제할 것을 말하고, 제2조에는 滇池의 蒙自縣에 難處해 있으므로 아예 境外의 保勝 지방을 通商구역으로 삼고, 이 다음 商船이 保勝의 克關에 도착하면 드나드는 貨物稅를 징수하되 각처 海口에서도 이 예에 따른다는 것을 말하고, 제3조에는 중국과 프랑스가 월남의 北圻 전체를 공동 보호하되, 滇·越의 境外와 송코이강의 중간을 지정하고 두 나라가 官員을 파견하여 보호구역으로 삼을 것을 말하였는데, 이 세 가지 대책은 즉시 總署에 보내왔고, 總署에서는 피차 관원을 파견하는 일에 대해서 다시 상의 대처하였다. 그러나 이 세가지 조항의 줄거리가 전번 天津會議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이는 전부를 승낙할 수 없다. 아뭏든 우리의 滇·粤 군사가 오랫동안 關外에 주둔하고 있다가 잠시 境外로 옮겼고, 부링도 프랑스에서 北圻를 침략할 뜻이 없다는 것을 總署에 照會해 왔으니, 때는 光緖 8년(1882년) 11월이었다. 처음에 부링이 天津에 있으면서 프랑스 外部에 사이공의 巡撫 德未助爾에게 北圻로 서찰을 날려 프랑스 군사가 우리 중국과 감정을 도발하지 말도록 명할 것을 電請[電報로 청하는 것]하므로, 外部에서는 德未助爾가 이를 겉으로 응하고 몰래 위반할까 염려하여 그를 해임하여 버렸다. 전번에 德未助爾가 드베일의 유혹에 빠져서 송코이강 兩岸에 鑛産이 가득 매장되어 있으므로 이를 採鑛하면 큰 이익을 획득할 것이라는 말을 믿고 巴黎(파리)의 富豪들을 종용, 자금을 모아 채광하여 股票[株式의 票]가 이미 發賣되었다. 그런데 股票를 買入한 자들이 멀리 프랑스에 있어 鑛産의 결과를 알 수 없고, 또 股票[株價]도 폭등하지 않아 폭리를 볼 수 없으므로 프랑스가 중국과 감정을 도발하여 군사를 풀어 鑛地를 보호하도록 만든 뒤에야 사람들의 耳目을 현혹시켜 그 股票가 몇 갑절로 폭등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德未助爾가 갑자기 海北에서 해임 전보를 받게 되고, 또 프랑스 군사에게 중국 군사와 감정을 도발하지 못하도록 하자 매우 실망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 부링이 바로 滬上에 이르러 이번 세 가지 조약의 줄거리를 우선 본국 外部에 전보하므로 外部에서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回電하였고, 그가 다시 공문을 작성하여 그 내용을 자세히 서술하므로 外部에서 역시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回電함과 동시에 우리 總署에 전보하도록 지시하였으니, 때는 금년 정월이었다. 그 뒤 얼마 안되어 프랑스 정부의 모든 要人들이 누차 更迭되었는데, 現任 外部의 처사는 前任 外部의 전보 약속에도 불구하고 德未助爾의 제의에 동조하여 정월 28일에 부링公使에게 해임 전보를 보내 소환하여 전번의 합의를 전부 뒤엎었고, 3월 경에는 우리 군사가 境外로 퇴각한 틈을 타 프랑스의 戍兵을 시켜 월남의 南定과 海內(하노이) 등 城을 습격하고, 다시 1천5백여명의 군사를 보내 돕도록 하였으며, 아울러 議院의 인준을 거쳐 軍費를 증가하여 월남의 北圻를 의젓이 자기네의 外部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월남의 北圻는 우리의 세 省과 연이어져 있으므로, 가령 프랑스 사람들이 중국을 침략해 온다면, 중국에서 어찌 앉아서 구경만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이 월남의 통킹을 침략하고 중국의 雲南과 通商하려 하면서도 사전에 중국과 그 가부를 타진하지 않고 중국의 속국인 월남을 협박하여 그 일을 대신 주관하게 하였으니, 중국에서 어찌 이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월남이 오랫동안 중국의 속국으로 되어 왔음은 海內外 각국에서 다 아는 사실인데, 프랑스에서 감히 이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걸핏하면 새 조약을 준수한다는 말을 내세워 제멋대로 군사를 일으키고 싸움을 벌이곤 하니, 이는 월남만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중국까지도 너무 무시한 것이다. 이를 公法에 밝은 人士에게 질문한다면, 그 是非가 반드시 판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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