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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적종합목록

秋江先生遺集

표제/저자사항
秋江先生遺集 / 白樂寬 著; 李燮 編
판사항
鉛活字本
발행사항
保寧: 白彰均家, 1958
형태사항
2卷1冊: 寫眞; 25.0 x 17.5 cm
주기사항
跋: 府君沒後七十六年戊戌(1958)...白仁基
序: 戊戌(1958)...張勉
분류기호
한국십진분류표(박봉석편) -> 2511
ISBN
N

소장도서관 정보

좀더 상세한 도서관 정보를 확인하시려면 도서관명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도서관 수:1]

소장도서관 정보 목록
번호 지역 도서관명 청구기호 시작권호(권차) 목차 해제 원문 소장MARC 자관MARC
1 서울(11) 국립중앙도서관 BA2511-29-3 해제 원문 소장 자관
2 서울(11) 단국대학교 퇴계기념도서관 IOS,고810.819-백794ㅊ 소장 자관
KOL000028999 추강(秋江) 백낙관(白樂寬)선생 시문집 본 해제본은 조선 국말의 우국열사인 추강(秋江) 백낙관(白樂寬) 선생의 시문과 상소문등 유고선생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발간한 문집이다. 책 앞머리 서문 다음에다 선생의 초상을 실었는데 “秋江白先生 三十七歲壬牛七目遺像”이라 했으니 이해는 고종(高宗) 19년(1882)으로 선생이 제주도에 유배되던 때이다. 『추강집(秋江集)』은 1958년에 간행되었으나 발간 준비는 1910년 7월 청송(靑松) 심상직(沈相直)이 초본의 발문을 쓴 것으로 보아 한일합병(1910. 8. 29) 이전에 계획했다가 일제의 독정 때문에 48년간이나 미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다. 본 해제본의 내용은 권1이 시(詩)로 「상화서이선생 항로(上華西李先生 恒老)」를 비롯하여 「절명시(絶命詩)」에 이르는 5언, 7언절구가 53수 수록되고, 권2에는 문(文)이 「척화소(斥和疏)」, 「상대원문서(上大院君書)」, 「여최면암익현서(與崔勉庵益絃書)」, 「거화초기(擧火草記)」, 「혜산선생행장(蕙山先生行狀)」등 주로 소장문(疏狀文)과 서(書) 및 행장의 글이 21편이고, 권3은 부록이라 하여 행장과 선생의 실기(13항목) 등이 23편이 수록되어 저자의 기개와 행적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저자 백낙관(白樂寬; 1846-1883)은 자가 경교(景敎), 호가 추강(秋江)이며 과거시험에도 나가지 않았던 충청도의 순수하고 기개 높은 선비였다. 고종 18년(1881) 영남 유생들이 척왜(斥倭) 척사(斥邪)를 외치는 만인소(萬人疏)를 올린 것이 모조리 민씨 정권에 의하여 묵살되자 백낙관은 고종 19년(1882) 5월에 임금에게 조정의 난신적자를 규탄제거하고 척사, 척왜정책을 주창하는 상소문을 미리 써 가지고 목멱산(남산)에 올라가 봉화를 붙이고 상소의 불을 밝혀서 서울 장안을 놀라게 했다. 민비파에서는 대원군의 사주로 단정하고 구금했는데 대원군과는 무관했다. 그러나 대원군이 정권을 뒤집어 빼앗던 임오군란(壬午軍亂; 1882年6月)때 군인에 의해 석방되었으나 왕명이 없이는 풀려날 수가 없는 것이라며 스스로 감옥에 들어갔다. 마침 대원군 집정후에 정식으로 석방되어 충청도 보령에 내려가 있다가 범상부도죄(犯上不道罪)로 다시 구금되었다가 고종 19년(1882) 10월에 제주도로 위리안치 되었다. 유배지에서는 스스로 죄인을 자처하며 독서로 의연했는데 고종 20년(1883) 6월에 의금부로 다시 압송되고 혹독한 신문을 받은 뒤 8월에 서소문 형장에서 참형되었다. 조선사회에서 항명한 상소자는 흔히 있을 수 있는 구금과 유배, 그리고 신문과 참형 이였으나 백낙관은 그 역정이 너무도 의연하고 강직하였다 하여 세인들이 감탄하고 추모한다고 서문과 발문 그리고 찬(贊)에서 쓰고 있다. (김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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