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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逍遙堂集

표제/저자사항
逍遙堂集 / 太能 著; 申鏡虛 編
태능   신경허   
판사항
鉛活字本
발행사항
京城: 新文館, 1920
형태사항
28張: 21.7 x 15.3 cm
주기사항
序: 呂圭亨
序: 聖上正宗十九年乙卯(1795)...丁範祖
序: 聖上十九年乙卯(1795)...李輪祥
跋: 嘉慶五年庚申(1800)...李晩輝
해당 자료의 보존 및 훼손 상태에 따라 이용이 제한될 수 있음
열람용은 복사본임
분류기호
한국십진분류표(박봉석편) -> 3648

권별정보

권별정보 목록
편/권차 편제 저작자 발행년도 ISBN 청구기호 자료이용하는곳 자료상태
1 太能 著;申鏡虛 編 1920 위창古3648-97-7 고문헌실 신청후이용(서고)

  본서는 조선시대 불교를 대표하는 서산(西山)대사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의 4대 제자 중 하나인 소요 태능(逍遙 太能, 1562-1649)의 시문집이다. 저자인 태능의 속성은 오(吳)이며 전라도 담양 출신으로 선조 7년(1574) 13세에 장성 백양사(白羊寺)에서 출가하였고 황벽(黃檗)에게 수학한 후 휴정의 동문인 부휴 선수(浮休 善修, 1543-1615)에게 경전을 배웠다. 이때 운곡 충휘(雲谷 冲徽), 송월 응상(松月 應祥)과 함께 부휴 선수 휘하의 ‘법문 삼걸’로 불리기도 했다. 이어 묘향산에 주석하고 있던 휴정 문하에 들어가 20년간 공부한 후 법을 전수받았으며 임진왜란 때는 승병장으로 활약하였다. 1601년부터는 금강산, 오대산, 구월산 등을 유력하였고 만년에는 지리산 연곡사(鷰谷寺)에 머물다가 인조 27년(1649) 법랍 75년, 세수 88세로 입적하였다. 연곡사와 보개산 심원사(深源寺), 두륜산 대둔사(大屯寺)에 탑비가 세워졌으며 1652년에 효종이 혜감선사(慧鑑禪師)라는 시호를 내렸다고 전한다. 제자 중에서 침굉 현변(枕肱 懸辯), 해운 경열(海運 敬悅)이 그의 선과 교를 각각 계승하였다고 전하며 저술로는 시문집인 본서만 남아 있다. 그의 문파 소요파(逍遙派)는 편양파(鞭羊派), 사명파(四溟派), 정관파(靜觀派)와 함께 휴정 문하의 4대 문파로 일컬어졌는데 소요파는 청허계의 본찰격인 대둔사의 13대 종사(宗師) 일부를 배출하는 등 주류 문파 편양파에 버금가는 세력을 이루었다.
  본서의 처음에는 1798년 항양거사(恒陽居士) 여규형(呂圭亨)이 쓴 「중간소요당집서(重刊逍遙堂集序)」, 1795년 해좌산인(海左散人) 정범조(丁範祖)가 찬한 「소요대사시집서(逍遙大師詩集序)」, 같은 해에 지어진 사남거사(沙南居士) 완산(完山) 이윤상(李輪祥)의 「소요당집서(逍遙堂集序)」가 수록되어 있다. 본문은 「숙서정(宿西亭)」, 「새영준사(賽英俊師)」, 「경차사명대사운(敬次四溟大師韻)」을 비롯하여 5언 절구, 5언 율시의 시(詩)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뒤의 <추록(追錄)>에는 「관음찬(觀音贊)」, 「임종게(臨終偈)」, 「무제(無題)」, 「부서산(付西山)」, 「용추사법당중창기(龍湫寺法堂重創記)」 등 9편의 게(偈)·찬송(贊頌) 및 기문이 실려 있다. 이어 1800년 순창군수(淳昌郡守) 이면휘(李勉輝)가 지은 「발문」, 태능의 11세 법손 예운 혜근(猊雲 惠勤)이 조계산(曹溪山) 대각암(大覺庵)에서 쓴 「행장」,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이 지은 「소요비명병서(逍遙碑銘竝書)」, 홍문교리(弘文敎理) 유하원(柳河源)과 통주거사(通洲居士) 유사형(柳士衡)이 제(題)한 「상찬(像贊)」이 수록되었다. 이면휘는 태능의 비명을 찬하였던 이경석의 6세손으로 발문에서 유고(遺稿)가 전해지지 않다가 이때 이경석의 비명 등을 추가하여 새로 간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앞의 서문과 발문에 의해 해남 대둔사의 후손들이 조사 태능의 글이 산실된 것을 안타깝게 여겨 본 시집의 재간을 도모하였고 담양 옥천사(玉泉寺)에 있던 6세 법손 춘담(春潭)의 주도하에 1800년 옥천사에서 중간『소요당집』이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서는 이 중간본을 1920년에 신문관(新文館)에서 재차 간행한 것으로 표지에 “逍遙堂 太能禪師 撰 逍遙集 全 新文館藏版”이라고 적혀 있고 책의 말미에는 대정(大正) 9년 8월 신문관에서 신경허(申鏡虛)가 발행하였다는 서지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 면에는 「정오표(正誤表)」와 함께 “朝鮮全南 海南大興寺 寄贈”이라고 써있어 대흥사(대둔사)에서 본서의 저본인 중간 『소요당집』을 기증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본서의 발행자 신경허는 바로 이 대흥사의 주지였다.
    본서의 표제는 ‘逍遙集’이지만 권수제, 판심제, 서문 등에서는 ‘逍遙堂集’으로 칭하고 있어 이를 따른다. 『소요당집』은 『한국불교전서』8에 수록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도서관에는 본서와 같은 신문관 간행본과 함께 1800년 옥천사 중간본이 소장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古 3447-82>)은 표지에 ‘戊辰五月造成冊’이라고 되어있어 1808년(순조 8)에 성책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본서에 수록된 「중간소요당집서」는 빠져있다. 이 「중간소요당집서」에서는 “조사(祖師) 문중에서 소요와 편양은 선종, 송운(松雲; 四溟 惟政)은 교종으로서 일시 병립하였다”고 평가하였는데 이처럼 소요파는 선종 문파로서 자파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본서는 소요 태능의 선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으며 『소요당집』의 중간은 18-19세기 소요파의 세력과 자의식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김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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