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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泛虛亭集

표제/저자사항
泛虛亭集 / 尙震 著
상진   
판사항
石板本
발행사항
保寧: 寶釰精舍, 1942
형태사항
9卷4冊: 四周單邊, 半郭 20.3 x 14.9 cm. 10行20字 註雙行. 上二葉花紋魚尾; 30.9 x 20.3 cm
주기사항
序: 昭和十六年辛巳(1941)...李重明
跋: 昭和十六年辛巳(1941)...朴奎和
跋: 昭和十七年(1942)...尙昌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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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기호
한국십진분류표(박봉석편) -> 3648
자료실 이용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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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별정보

권별정보 목록
편/권차 편제 저작자 발행년도 ISBN 청구기호 자료이용하는곳 자료상태
尙震 著 1942 우촌古3648-44-1 디지털열람실 이용가능
尙震 著 1942 우촌古3648-44-1 디지털열람실 이용가능
尙震 著 1942 우촌古3648-44-1 디지털열람실 이용가능
尙震 著 1942 우촌古3648-44-1 디지털열람실 이용가능
권호명 : 天

149
目次
表紙 = 0
序 = 1
遺墨 = 9
琴硯古槐 = 17
總目錄 = 19
卷之一目錄 = 23
卷之一 = 25
卷之二目錄 = 41
卷之二 = 49


권호명 : 地
97
目次
表紙 = 0
卷之三目錄 = 1
卷之三 = 9
別集 = 79


권호명 : 人
151
目次
表紙 = 0
卷之四目錄 = 1
卷之四 = 7
別集 = 45
箋 = 67
卷之五目錄 = 71
卷之五 = 75
卷之六目錄 = 89
卷之六 = 91


권호명 : 陰
168
目次
表紙 = 0
卷之七目錄 = 1
卷之七 = 3
卷之八目錄 = 79
卷之八 = 81
卷之九目錄 = 127
卷之九 = 129
跋 =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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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중기의 문신 범허정(泛虛亭) 상진(尙震, 1493-1564)의 시문집이다. 상진의 본관은 목천(木川), 자는 기부(起夫), 호는 송현(松峴)·향일당(嚮日堂)·범허재(泛虛齋) 등 할아버지는 우후(虞侯) 효충(孝忠)이고, 아버지는 찰방(察訪) 보(甫)이다. 어머니는 연안 김씨(延安金氏)로 박사(博士) 휘(徽)의 딸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매부인 하산군(夏山君) 성몽정(成夢井)의 집에서 자랐다. 15세가 되어도 공부에 뜻을 두지 않고 말달리고 활쏘기만 하여 이웃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자 이에 분발, 학업에 힘썼다. 중종 11년(1516)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어 중종 14년(151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이 되었다. 곧이어 봉교(奉敎)·예조좌랑을 거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특진되었다. 이후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등을 역임하고, 중종 28년(1533) 대사간 이어 부제학·좌부승지를 역임하면서 언론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그 뒤 형조참판을 지내고 경기도관찰사가 되어 민정을 잘 다스렸다. 중종 34년(1539) 중종의 특명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형조판서가 되었는데, 전례가 없는 특진이라 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한성부좌윤으로 체직되었다가 대사헌이 되었다. 이어 한성부판윤을 연임하고 중종 38년(1543) 공조판서가 되었다. 이듬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병조판서가 되어 국방을 총괄하였다. 특히 중종의 신임을 얻어 우찬성(右贊成)에 제수되었으나 대간의 탄핵으로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체직되었다. 곧 이어 형조판서가 되었으나 윤원로(尹元老)와 결탁했다 하여 인종 즉위와 함께 경상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명종이 즉위한 후 이기 등이 실권을 장악하자, 그의 천거와 문정왕후(文定王后)의 후원으로 병조판서에 중용되어 군정 확립에 힘썼는데, 특히 마정(馬政)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실시에 노력하였다. 명종 3년(1548)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라 우찬성이 되었으나, 질병으로 사임하였다. 이듬해 이기·윤원형(尹元衡)의 추천으로 이조판서가 되었고, 이어 우의정에 올랐다. 이때부터 이기·심연원(沈連源) 등과 더불어 국정을 주관했는데, 문정왕후가 주장한 양종(兩宗) 설립에 온건론을 펴서 유생들의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그 밖에 부민고소법(部民告訴法)을 실시해 민원을 살피기도 하였다. 명종 6년(1551) 좌의정에 올랐고, 명종 13년(1558) 영의정이 되어 그 뒤 5년 동안 국정을 총괄하였다. 좌의정 이준경(李浚慶)과 더불어 사림을 등용하는 데 힘썼다. 청렴하고 관후 인자한 명상(名相)으로서 조야(朝野)의 신망이 두터웠으나, 만년에는 윤원형·이기 등 소윤(小尹) 일파와 어울려 사림의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범허정집(泛虛亭集)』은 저자의 사후 오래동안 간행되지 못하다가 1942년에 이르러서야 후손들의 노력으로 초간되었다. 저자의 유문은 거듭된 병란으로 거의 소실되었는데, 현손(玄孫) 상자화(尙子華)대에 이르러 약간의 유문(遺文)을 민간에서 수집하고, 7세손 상귀택(尙龜澤)대에는 유문 1편(自警銘)을 추가하여 소책 1권의 고본(稿本)을 작성하였다. 그 뒤 12세손 尙渭(상위) 등은 다시 제가(諸家)의 문집과 실록에서 저자와 관련된 글들을 발췌하고 연보를 작성, 1942년에 9권 4책으로 간행하였다.
  본 해제의 대상인 중앙도서관 소장 『범허정집(泛虛亭集)』(우촌古3648-44-1)은 1942년에 간행된 판본이다.
  『범허정집(泛虛亭集)』은 모두 9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먼저 권1에는 시(詩) 23수, 부시(附詩) 14수 등이, 권2·3에는 소차(疏箚) 10편, 계사(啓辭) 120편, 계(啓) 11편 등이, 권4에는 의(議) 39편, 전(箋) 2편, 의(議) 22편 등이, 권5에는 서(書) 12편, 제문(祭文) 1편, 명(銘) 2편, 한글 가장(歌章) 1편, 한글 금조(琴調)「감군은곡(感君恩曲)」4수 등이, 권6은 연보(年譜), 권7-9는 부록으로 행장(行狀)·신도비명(神道碑銘)·제문(祭文)·사제문(賜祭文) 각 1편, 만시(輓詩) 4수, 제현증시(諸賢贈詩) 8수, 찬(贊)·본전(本傳)·유사(遺事)·개종개경과별시방목(改宗系慶科別試榜目)·사연도첩좌목(賜宴圖帖座目)·갑계좌목(甲契座目) 등이 수록되어 있다.
  문집에 수록된 글 가운데 「기제청송당(寄題聽松堂)」은 20세때 성수침(成守琛)의 청송당(聽松堂)을 주제로 읊은 시로서, 성수침과 청송당의 정경을 사모하는 마음을 읊고 있다. 「제강릉연곡창(題江陵連谷倉)」은 중종 30년(1535)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고 있을 때 지은 시이고, 「제강계객사(題江界客舍」는 중종 35년(1540) 평안도 관찰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 지은 시이다. 「제성청송파산수창첩(題成聽松坡山酬唱帖)」은 육언시(六言詩)로서, 그 아래에 사언시인 성수침의 원시(原詩)와 신잠(申潛) 등 13명의 수창시가 부기되어 있다. (송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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